한국학자인 마이클 페티드 미국 뉴욕주립대 교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문화로 밥상을 꼽는다. 밥과 국, 찬이 놓인 밥상에 여럿이 빙 둘러앉아 먹는 장면은 외국인 눈에는 이색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특히 국이 밥상 위에 빠지지 않고 오르는 것은 한국 고유의 전통이다. 밥을 뜨기에 앞서 숟가락을 적시게 하려는 오랜 관습에서 나온 것으로 추측된다.

국에 대한 기록은 이미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문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은 “헛되게 밥을 먹으니 맛이 국과 조화되길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도 “왕의 마음을 알아보려고 국을 엎질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고려 인종 때 ‘고려도경’에는 소금을 물에 넣어 끓였다는 국의 조리방법이 나온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선 사람들이 즐겨먹는 국으로 아욱국, 생채냉국, 다시맛국, 미역국 등을 열거하고 있다. 조선시대 연회 때 임금에게 국을 다섯 차례나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국이란 말은 1800년대부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전에는 ‘갱(羹)’이라고 불렀다. 갱이란 채소가 섞인 고깃국을 지칭한다. 지금도 갱물이나 갱사발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탕은 국과 구분되는데 국의 높임말로 보는 주장도 있고, 제사 때 쓰는 국을 지칭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 임금에게 올리는 것은 모두 탕이라고 불렀다. 국보다 더 오래 끓인 것을 탕이라고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한민족이 국을 끼니마다 먹을 정도로 사랑하는 이유는 분명치 않다. 농경문화에서 한정된 식재료로 많은 사람이 어울려 먹기에 국이 제격이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당연히 긴 숟가락이 필요했을 것이다. 제사와 관련돼 있다는 설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과 중국에는 제사 때 국을 끓여 상에 올렸다는 기록이 별로 없다. 신숙주의 ‘해동제국기’는 일본에서는 숟가락을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만으로 식사했다고 적고 있다.

국의 종류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지역마다 특색있는 국이 많아 알려진 것만 해도 수백가지다. 다만 조리법에 따라 장국, 토장국, 곰국, 냉국 등으로 분류하고 있을 뿐이다. 대부분의 국에 소금이 들어가는 것도 공통점이다.

식약청이 매월 셋째 수요일을 ‘국 없는 날’로 지정해 나트륨 섭취를 줄이는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75%가 국물을 좋아하는데, 국물이 많은 음식을 통해 나트륨을 과다 섭취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의 하루 나트륨 섭취량은 4831㎎으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수준(2000㎎)의 두 배가 넘는다. 하지만 수천년 내려온 국을 밥상에서 치울 수 있을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