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3선 시도설 소문…야권 반발, 여론도 부정적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는 2007년 대선에서 승리해 아르헨티나 헌정 사상 첫 선출직 여성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등장했다.

페르난데스의 대통령 당선에는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작용했다.

키르치네르는 대통령직 퇴임 후에도 연방하원의원이자 집권당 대표를 맡아 정치권의 최고 실력자로 활동했다.

남미대륙 12개국으로 이루어진 남미국가연합의 초대 사무총장을 역임했다.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은 2010년 10월 말 심장발작 증세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키르치네르의 공백을 딛고 2011년 10월 대선 1차 투표에서 54% 넘는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고, 같은 해 12월 임기 4년의 2기 정부를 출범시켰다.

2009년 마이너스 성장률(-3%)을 기록했던 경제가 2010년 9.2%, 2011년 7%라는 높은 성장세를 나타낸 것이 페르난데스 지지표로 이어졌다.

페르난데스의 지지율은 2기 정부 출범 직후 70%를 넘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나타난 경제성장 둔화세는 페르난데스의 지지율도 빠른 속도로 끌어내렸다.

인플레율 상승과 빈곤층 확산도 지지율 추락을 부채질했다.

여론조사기관 폴리아르키아(Poliarquia)의 지난해 말 조사에서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 머물렀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역사학자들은 역대 대통령의 지지율이 경제 실적에 의해 좌우된 경우가 많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군사독재정권(1976~1983년)이 끝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 이후 기록된 주요 정치적 격변은 경제 문제 때문에 발생했다.

1980년대에는 라울 알폰신 전 대통령(1983~1989년 집권)이 하이퍼 인플레로 임기 종료를 6개월 앞두고 전격 퇴진했다.

2001년엔 은행 자산 동결 조치 등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의 여파로 페르난도 데 라 루아 전 대통령(1999~2001년 집권)이 사임했다.

페르난데스로서는 2015년 대선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아르헨티나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꾸준히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상원의장을 겸하는 아마도 보우도우 부통령은 페르난데스의 3선 연임 허용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헌 논의를 조기에 시작해야 한다는 뜻을 밝혔다.

친(親) 페르난데스 청년조직인 '라 캄포라'(La Campora)도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3선을 지지하는 주장을 펴고 있다.

아르헨티나 의회는 지난해 10월 투표 연령을 18세에서 16세로 낮추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페르난데스의 3선 시도를 염두에 둔 사전 준비작업으로 해석됐다.

2011년 대선의 유권자는 2천300만명이었다.

투표 연령이 낮아지면서 유권자가 150만 정도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은 페르난데스의 3선 시도에 부정적이다.

여론조사기관 매니지먼트 & 피트(Management & Fit)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조사에서 65.9%가 개헌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2.9%는 페르난데스의 3선에 반대한다고 답해 집권 연장 시도에 대한 거부감을 반영했다.

정부와 집권당은 대선 이전까지 페르난데스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여론도 충분히 반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정치 전문가들은 개헌을 통한 3선 시도가 자칫하면 아르헨티나 사회를 뿌리째 흔들 '뇌관'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최근에 개헌이 이뤄진 때는 1994년이다.

카를로스 메넴 당시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연임에 성공하며 1989년부터 1999년까지 집권했다.

(상파울루연합뉴스) 김재순 특파원 fidelis21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