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용어로 ‘제멋대로’는 참 거친 말이다. 공식 외교문서에는 쓰기 어렵다. 중국이 혈맹이라는 북한에 ‘제멋대로(悍然) 군다’는 비난 성명을 낸 것은 그래서 놀라웠다. 2006년 북한이 첫 핵실험을 했던 때 그랬다. 당시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1781호)에 예상을 뒤엎고 찬성했다. 중국은행을 통한 대북 송금도 금지시켰고, 북한 유출입 물자를 샅샅이 뒤졌다. 중국의 분노가 느껴졌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송금 금지는 며칠 만에 풀렸고, 세관검사 강화는 금세 완화됐다. 중국은 거꾸로 제재수위를 낮추자고 설레발을 쳤다. 고급 와인과 벤츠자동차 등은 다시 중국 단둥에서 신의주로 넘어갔다. 유엔 결의로 수입이 금지된 사치품들이다. 중국은 사문화된 6자회담을 부활시켜 고립위기의 북한을 구해냈다.

북핵은 반대, 체제는 유지

중국의 정형화된 ‘북핵 공식’이다. 철천지 원수 대하듯 하다가 어느새 혈맹으로 다가간다. 최근 북한 핵실험 움직임에 대한 중국의 강경반응에 물음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문제가 생기면 수습할 길이 없다”(인민일보) “대북 원조를 줄여야 한다”(환구시보) 등 분명한 경고가 잇따르고,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유엔의 대북제재(2087호)에 동의하기도 했지만 진정성은 의심받고 있다.

이는 북한에 대한 중국의 자기모순적 이중성에서 유래한다. ‘북핵 불가’와 ‘북한 체제 유지’라는 상반된 요소의 충돌이다. 북핵은 한반도 안정을 해칠 시한폭탄이다. 동시에 베이징에서 가장 근거리에 있는 다른 나라의 핵무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북한이 괴멸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미국과 일본을 견제할 전략적 요충지가 사라진다. 북핵 반대 목소리는 높이면서, 심대한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국제사회의 제재에는 대립각을 세우는 모순된 행동은 이래서 반복된다.

중국이 북한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유아적 의리’부터 던져 버려야 한다. 중국과 북한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은 ‘조중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이다. 52년된 이 너덜한 문서에는 한쪽 국가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다른 한 나라는 무조건 참전토록 하고 있다. 공동운명체가 되자는 혈맹서약서라 할 수 있다. 북한이 중국에 뻔뻔하리만치 당당하게 원조를 요구하는 근거다.

혈맹이란 ‘유아적 의리’ 깨야

북한 소비량의 90%에 달하는 기름이 랴오닝성 단둥의 바산저장소에서 북한으로 흘러간다. 식량이나 의약품 등도 절대량이 중국에서 제공된다.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는 2011년 89%에 달했다. 중국이 원조를 끊으면 북한은 6개월을 못 버틴다고 할 정도다.

중국의 대북원조는 영향력 확대를 계산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긴 하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북한을 통제한다고 할 만한 실력행사를 한 적은 없다. 연평도 포격, 천안함 피폭 등 반(反)인륜적 반(反)민족적 범죄를 저지른 북한을 비호하는 데 여념이 없을 뿐이다. 북한에 대한 지원이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중국을 믿고 오판하도록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사고 있다.

다음달이면 시진핑 총서기가 중국 국가주석 자리에 올라 정권교체를 완성한다. 북한을 어떻게 규정하고 외교노선을 정할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중국은 대북 정책의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유아적 의리라는 감성에 지배받는 혈맹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기본 프레임으로 짜야 할 것이다. 북핵문제의 해법은 북한보다 중국이 먼저 변하는 데서 시작된다.

조주현 논설위원 fore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