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일처리가 계속 늦어지고, 얘기를 시작해도 화제가 집중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요즘 관공서를 다녀 온 기업인들에게서 자주 듣는 얘기다. “공무원들이 요즘 어디다 신경을 쓰는지 도통 알 수 없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공무원들은 요즘 무얼하고 있을까. 짐작이 갈 만한 일이 지난달 30일 있었다. 국내 1422개 중견기업들의 대표 단체인 중견기업연합회가 이날 성명서를 냈다. 내용은 지식경제부 내 중견기업정책국의 중소기업청 이관에 반대한다는 것. 이유는 많지만 가장 큰 것은 중견기업들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거나 강력한 지원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중기청은 차관급 부처로서 법률안 심의·제안권이 없다는 것이었다. 중견련은 그러면서 중견기업정책국의 중기청 이관에 ‘반대한다’가 아니라 ‘이관에 신중을 기해달라’는 표현을 썼다. 이익단체치고는 어법이 꽤 신사적이었다.

이걸 본 중기청 반응이 재미있다. 한 관계자는 “그럼 중기청을 법령 심의·제안권이 있는 장관급 부처로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중견련의 성명서가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는 안 봐도 비디오”라고 했다. 중견기업정책국을 중기청으로 떼주기 싫은 지경부 공무원들이 중견련에 성명서를 내도록 ‘사주’했다는 얘기다.

특히 중견기업정책국의 경우 인수위 발표대로 조직 개편안이 확정될 경우 당장 이달 내에 중기청이 있는 대전으로 짐을 싸야 될 판이다. 연말 또는 내년 초 다른 부서 직원들과 함께 세종시로 이전하는 계획을 전제로 짜놓은 자녀 교육문제 등 번거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때문에 어떻게든 인수위 개편안을 바꿔 지경부에 남고 싶어 일을 꾸몄을 것이라는 게 중기청 쪽 얘기다.

물론 지경부나 중견련은 이런 ‘음모론’을 일축한다. 지경부 중견기업정책국 관계자는 “사주라니 말도 안되는 얘기”라면서 “중견련이 성명서를 낸 것을 31일자 아침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중견련 측도 “관련 부서와 전혀 상의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지금으로선 누구 얘기가 맞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요즘처럼 기업들이 자금난, 일감난, 환율난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공무원 사회가 조직이관 문제로 아웅다웅하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는 것이다. 위기의 기업을 지켜줄 구원투수는 없고 자신만 구해달라는 공무원들이 걱정스럽다는 지적이다.

박수진 중기과학부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