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상공간 소유권 첫 판결 "회사 홍보업무에 사용한 SNS도 개인 소유"
회사 명칭과 업무 내용이 포함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의 소유권을 다룬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개인이 만든 계정이라도 회사가 SNS 운영에 적극적으로 관여했을 때는 회사가 소유권을 갖지만 그렇지 않다면 개인에게 소유권이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가상공간에 대한 개인과 회사 사이의 소유권 기준을 다룬 판결은 이번이 처음으로 앞으로 나올 비슷한 사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홍보팀장의 SNS 계정, 누구 것인가

서울남부지법 민사9단독 서영효 판사는 의류 제조·유통업체 A사가 회사명이 포함된 자사 SNS 계정을 무단 이용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퇴직한 전 홍보팀장 성모씨(42)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서 판사는 “피고 성씨가 회사를 대표해 계정을 운영했거나 계정의 업무 관련성을 인정할 충분한 자료가 없기 때문에 회사 소유가 아닌 개인의 가상공간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성씨는 2001년부터 A사의 홍보·마케팅 업무를 맡으며 2010년 2월과 11월에 회사 영문명이 포함된 트위터와 페이스북 계정을 개설했다. 성씨가 올린 게시물엔 사적인 내용과 회사 홍보 내용이 섞여 있었다. 성씨는 2011년 4월 사직했으나 SNS 계정은 계속 갖고 있었다. 이에 회사 측은 “성씨가 퇴직 후에도 9개월 동안 회사 계정을 무단 사용해 영업에 손해를 입었다”며 2000여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패했다.

○“업무 관련성 충족해야 회사 소유”

서 판사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은 원칙적으로 개인의 가상공간”이라며 “사용자가 속한 회사명이나 상호를 주소에 사용하고 회사 관련 업무나 홍보 내용을 게재했더라도 개인 가상공간이라는 성격이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해당 계정의 게시 내용이 주로 회사와 관련된 것인지, 계정을 운영한 장소가 회사이며 계정 운영을 회사에서 지원했는지 여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 판사는 이 계정이 회사의 요청 또는 지시에 따라 홍보용으로 개설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계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SNS 전담팀이 꾸려지거나 공식 결재 등 회사가 계정 개설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자료를 확인할 수 없어 회사 소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물 중 회사 홍보 내용은 31% 정도로 회사 홍보가 주된 목적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여겼다.

○회사 상호 이용한 비난·비방은 안 돼

법조계에서는 향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을 때 이 판결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개인과 회사가 연관된 SNS 계정의 소유권을 둘러싼 향후 분쟁에 판례로서의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아무나 무분별하게 회사 상호를 이용해 SNS를 이용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상표권 침해 등의 논란을 빚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가율의 양지열 변호사는 “회사 상호를 포함해 SNS 계정을 만든 뒤 회사를 비방하는 내용을 올리면 업무방해나 명예훼손 등으로 처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개인명의 계정이라도) 신중한 사용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