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입시지옥도 해소할 중견기업 육성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 대학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할까. 필자는 얼마 전 일본 경제학자 몇 분과 함께 그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한국이 더하다고 했다. 한국이 대학 진학률이 더 높을 뿐 아니라, 좋은 대학에 가려는 욕구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원래 세계적으로 입시 경쟁은 일본이 원조(元祖)다. 그런데 한국이 그보다 더한 나라가 되었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배움’으로 경쟁하고 그것으로 출세하는 게임의 규칙이 더 철저하게 지켜지니까 좋은 것일까. 물론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이 일본보다 입시 경쟁이 더 치열한 데는 명백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정규직 일자리 구하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이다. 그런 조건 하에서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절실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규직 일자리는 어떤 것이 있나. 공무원, 국영기업 직원, 교사 같이 정년이 보장되거나 의사, 변호사처럼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업이 있다. 이 직업의 특징은 국가 권력에 기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직업은 누구나 갖고 싶어 하지만 일자리의 다수를 점할 수는 없다. 결국 민간 기업이 정규직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민간 기업이 어떻게 정규직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커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기업이 너무 적다. 한국은 소수의 대기업 밑에 다수의 중소기업이 존재할 뿐, 그 중간의 ‘중견기업’은 너무 조금밖에 없다.

한국의 고용 구조를 기업별로 보면 대기업보다 중견기업 비중이 오히려 낮은 ‘호리병’형이다. 그래서 민간부문에는 정규직 일자리가 귀하고 비정규직만 넘쳐난다. 비정규직 중 대기업이 고용하는 인력은 30여만명 정도고 나머지는 중소기업 몫이다.

일본은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직하지 못해도 중견기업에 정규직으로 들어가서 그런 대로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반면 한국은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구도인 것이다.

한국에 중견기업이 왜 적은가. 중소기업을 못 자라게 하는 대기업의 불공정거래가 한 요인일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뺏고, 사람 빼가고, 가격을 후려치는 여건에서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자라기는 어렵다. 이것은 경제민주화를 통해 반드시 시정해야 할 과제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 되려는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의 유인체계는 바로 그렇게 짜여져 있다. 중소기업에서 벗어나면 100여가지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여건 하에서 중소기업이 스스로 그 위치를 ‘졸업’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런 ‘피터팬 신드롬’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졸업과 함께 혜택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줄어들게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중견기업 육성은 결국 ‘돈 문제’다. 재정 부담 없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중견기업 문제가 지금까지 말만 하고 시행이 잘 안 된 것은 바로 재정 부담 때문은 아닌가.

새 정부는 중견기업 육성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새 정부라고 재정 부담 문제를 피해 갈 수는 없다. 복지를 비롯해 대선공약에 따른 지출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지킬 수 있는 것만 공약했다고 하지만, 우선순위를 매기는 작업은 불가피할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중견기업 육성은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해야 할까. 아마도 가장 시급한 복지 지출과 함께 최우선순위에 놓아야 할 것이다. 중견기업 육성은 지난 대선에서 제기된 일자리와 경제민주화를 관통하는 고리라는 점에서 그렇다.

한국에서 대학 입시가 주는 스트레스는 이미 위험 수준을 넘었다. 그것이 중견기업 육성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중견기업 육성도 ‘돈’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둘 다 충분조건은 아니어도 필요조건인 것은 틀림없다. 불가피하다면 필요한 만큼은 재정 부담을 하는 데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할 것 같다.

이제민 < 연세대 교수·경제학 leejm@yonsei.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