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민 차기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 "신흥시장 못 뚫으면 제지업계 죽는다"
최병민 깨끗한나라 회장(61·사진)의 얼굴에선 병색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2008년 말 간경화로 쓰러져 아들의 간을 이식받는 큰 수술을 받았다. 최 회장은 지난해 초 회사로 복귀했고, 지난달 한국제지공업연합회 회장단 모임에서 차기 회장으로 추대됐다. 2007년 제지연합회장에 취임했다가 2년 만에 병으로 중도 하차한 지 4년 만의 복귀인 셈이다.

그가 복귀 후 내놓은 첫 번째 비전은 깨끗한나라를 2017년까지 매출 1조원대(2012년 매출 6334억원) 기업으로 키우겠다는 것. 깨끗한나라는 1966년 부친인 고(故) 최화식 사장이 ‘대한펄프공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세웠다. 부친은 1958년 단사천 씨와 함께 한국제지를 설립했던 국내 제지업계 1세대다. 고 최 회장은 이후 대한펄프로 독립, 회사를 과자상자나 화장지상자 등에 쓰이는 포장지용 종이(백판지) 전문업체로 일궜다.

서울대 외교학과와 미국 USC 경영학 석사(MBA) 출신인 최 회장은 1978년 깨끗한나라에 입사, 사업부문을 백판지에서 화장지와 기저귀, 생리대 등 생활용품 분야로 넓혔다.

최 회장은 제지업계 현황과 관련, “업계로 돌아와 보니 우리회사뿐만 아니라 제지업계 전체가 내수 부진에다 환율문제, 세계 경제위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국내보다는 해외시장을, 국내에서의 가격경쟁보다는 해외에서의 품질경쟁에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위해 업계가 △동남아 등 새 시장 개척 △부단한 기술 개발을 통한 품질 향상 △에너지 비용 절감을 위한 시설투자 등에 나설 것을 제안했다.

최 회장은 “일본이나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종이 공급이 포화상태지만 인도네시아 태국 등 개발도상국은 종이 소비를 꾸준히 늘리고 있다”며 “국내에서 출혈 경쟁하기보다 이들 시장을 적극 개척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업계가 연구·개발(R&D)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제지업계의 지속 성장을 위해선 주원료인 폐지와 펄프의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폐지업계와의 공생관계 구축을 강조했다.

폐지업계는 2008년 이후 중국 등에서 수요가 급증하자 국내에 공급하던 폐지를 수출로 돌려 국내 종이가격 상승을 부추겼다. 2011년 기준으로 펄프는 연간 사용량(295만)의 17.5%, 폐지(1026만)는 86%를 자급하고 있다. 폐지 자급률은 높지만 폐지업체들이 이를 수출로 돌리면 국내 제지업계가 공급난에 시달릴 수 있다는 진단이다. 최 회장은 “폐지수출 문제는 폐지업계만 뭐라 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제지업계는 안정된 가격을 보장해주고, 폐지업계는 품질을 유지해 주면 상생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회장으로 두 번째 취임하는 제지공업연합회에는 신문용지 3사(대한제지 전주페이퍼 페이퍼코리아)와 한솔제지 무림페이퍼 등 인쇄용지업체, 세하 한창 등 백판지업체 등 총 18개 중견·대기업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박수진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