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판정 전반에 대한 재심의 명령..삼성 "재심의서 우리 주장 인정 확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23일(현지시각) 삼성전자 제품의 수입금지를 권고했던 예비판정 결과를 재심의키로 함에 따라 벼랑끝에 몰렸던 삼성이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날 판정은 삼성전자와 애플이 재심의 요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10월 예비판정에선 삼성이 애플의 스마트폰·태블릿PC 관련 특허 4건을 침해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ITC의 예비판정이 뒤집히는 것은 과거의 예에 비춰 흔한 일은 아니다.

이 때문에 당초 관측은 재심의 기각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됐다면 삼성전자 제품군의 수입금지가 확정됐을 뻔 했다.

더욱이 ITC 조사운영위원회가 토머스 펜더 ITC 행정판사의 예비판정에 대해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도 삼성에 불리한 정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삼성이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특허 침해 사안에 대해 ITC가 재심의를 결정한 전례가 있고, 특허청이 최근 애플의 특허 3건이 무효라고 잠정 판단한 것을 고려해 재심의 결정이 나올 수도 있다는 분석도 없진 않았다.

삼성전자는 ITC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재심의에서 우리의 주장을 인정해줄 것으로 확신한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번 특허침해 건에서 문제가 된 특허는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 모양이며 앞면이 평평한 아이폰의 전면 디자인 특허(D'678특허) ▲휴리스틱스를 이용한 그래픽 사용자 환경 관련 특허('949특허) ▲화면에 반투명한 이미지를 제공하는 방식과 관련한 특허('922특허) ▲헤드셋 인식 방법 관련 특허('501특허) 등이다.

이들 가운데 D'678특허와 '949특허는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공동 발명한 것이다.

ITC의 재심의 명령은 예비판정 전반(in its entirety)에 대한 것이라는 점에서 삼성에 다소 유리하다.

만약 삼성전자가 침해한 것으로 판정했던 특허 4건 중 일부만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면 재심의 결과와 관계 없이 삼성 제품의 수입금지 권고는 유지되겠지만 ITC가 예비판정 전반을 재심의하기로 했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 삼성이 애플 특허를 한 건도 침해하지 않았다는 결정이 내려질 수도 있다.

ITC는 또 삼성이 특허를 위반한 것으로 판정됐던 '922특허·'501특허와 관련한 내용을 수정하도록 행정판사에게 특별히 따로 명령했다.

다만, 지적재산권 전문가인 플로리안 뮐러는 이 명령은 예비판정에서 이들 두 특허 침해를 서술하면서 논리적 오류가 있었던 것을 고치고 추가 특허 침해 제품을 명시하라는 의미로 볼 수 있어 이 명령은 애플에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ITC는 미국 관세법 337조에 의거해 미국에 수입되는 물품이 특허를 침해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며, 특허 침해 판단을 내리면 불공정 무역행위로 간주해 해당 제품에 대한 수입금지를 대통령에게 권고한다.

이번 판정의 대상 제품은 갤럭시S와 갤럭시S2, 갤럭시넥서스, 갤럭시탭 등으로, 갤럭시S3나 갤럭시노트2처럼 미국 시장에서 현재 활발하게 판매되는 제품은 포함되지 않아 설령 재심의 요청이 기각되더라도 삼성전자에 직접적인 타격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했다.

재심의가 받아들여짐에 따라 ITC의 최종 판정이 3월27일에서 더 늦어지게 됐다는 점도 삼성에는 호재다.

재심의 과정만 해도 최대 3~4개월이 소요되는 데다 최종 판정에서 제품의 수입금지가 결정되더라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일지 결정하는 데 60일이 더 걸린다.

최종 판정에서 예비판정과 마찬가지로 삼성 제품을 수입금지 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더라도 삼성은 최대 6개월의 시간을 버는 셈이다.

갤럭시S4가 2분기 중에 출시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6개월 뒤의 갤럭시S2 수입금지는 사업 면에서 큰 의미가 없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플로리안 뮐러는 이 같은 결정 지연은 삼성에 이익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삼성전자가 해당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문제가 된 특허를 대체할 우회 기술을 준비해 놓고 있는 점도 삼성 쪽에 한결 부담을 더는 요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ITC의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특허를 무기로 삼성전자를 압박해 온 애플의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삼성전자로선 향후 애플과의 소송전 등에서 확고한 우위를 점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평가다.

(서울연합뉴스) 권영전 기자 comm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