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신촌오거리에서 17년간 터줏대감으로 자리를 지킨 그랜드마트 신촌점은 지난해 11월 영업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지금은 1~6층을 통째로 일본 제조·직매형 의류(SPA·패스트패션) 브랜드 유니클로 매장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이다.

서울 주요 대학상권이 달라지고 있다. 10~20년 전만 해도 대학생들의 ‘아지트’였던 학교 앞 술집과 당구장, PC방 등은 대부분 존폐 기로에 몰려 있다.

추억의 명소도 탈바꿈하고 있다. 서울에서 몇 안 되는 비(非)대기업 계열 영화관으로 자존심을 지켜온 신촌 아트레온(옛 신영극장)은 영업권을 CJ그룹에 넘기고 다음달 15일 문을 닫는다. 1950년 설립된 이후 63년 만이다. 오는 6월께 CGV 간판을 달고 재개장한다. 김용순 아트레온 지배인은 “그동안 분에 넘치는 성원을 받았고 임직원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학가에서는 서점 찾기도 어렵다. 이해찬 전 민주통합당 대표가 1978년 창업한 서울 신림동 고시촌 광장서적은 지난 2일 부도 처리됐다. 오늘의 책(연세대 앞)이 2000년, 장백서원(고려대)은 2001년, 논장(성균관대)은 2004년, 청맥(중앙대)과 녹두(동국대)는 2011년 사라졌다.

이런 자리를 대신해 요즘 대학상권을 주도하는 3대 키워드는 커피전문점, 패스트패션, 외국인 유학생이다. 대형 커피전문점은 ‘24시간 영업’을 무기로 도서관 역할까지 하고 있다.

일본 유니클로, 스페인 자라, 스웨덴 H&M 같은 패스트패션 브랜드도 젊은 층을 붙잡기 위해 대학상권에 대형 매장을 늘리고 있다. 성균관대 인근 대학로 1호점에서 인기를 끈 뒤 백화점에 진출한 신성통상의 탑텐처럼 대학상권이 신규 패스트패션 브랜드의 시험 매장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대학마다 외국인 유학생을 전략적으로 유치하면서 이들을 겨냥한 이국적 분위기의 상점이 많아진 것도 특징이다. 전체 학부생의 10% 이상이 중국 유학생인 건국대 상권에서는 이들이 핵심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어느 대학상권을 가든 비슷한 업종과 똑같은 브랜드가 몰리는 데 대해 ‘피로감’을 호소하는 학생도 많다. 커피전문점 100여곳이 경쟁 중인 고려대에서는 “카페가 너무 많아 정작 싼 값에 밥먹을 밥집이 없다”는 지적마저 나온다.

성신여대 인근 호프집의 K사장은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대규모 프랜차이즈들이 들어와 임대료만 올려 놓으니 수지를 맞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임현우/배석준/박상률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