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석좌교수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경영 구루다. 올초 ‘싱커스 50(Thinkers 50)’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 사상가 1위에 이름을 올렸다. 미 경영 사이트 싱커스 50은 격년으로 세계의 경영 사상가 50인의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1971년부터 햇수로 3년간 몰몬교 선교사로 활동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그는 1997년에 쓴 《혁신기업의 딜레마》에서 역설한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혈액암에 뇌졸중이 겹쳐 어렵사리 투병 중인 그가 정통 경영서가 아닌 자기계발서 《당신은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를 내고 강의실 밖 대중에게 말을 걸었다. 기업의 흥망성쇠를 설명하는 경영학 이론을 대입해 풀어낸 보통사람을 위한 인생살이 지침서다. 매년 MBA 종강일이면 교재를 덮고 이야기를 꺼내던 그의 인생경영학 특강 모음집이기도 하다. 거꾸로 보면 그 자체로 기업인을 위한 경영학 강의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쟁쟁하다는 하버드대 MBA 출신들의 부침을 눈으로 보면서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하게 잘사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진중한 문답이어서인지 제법 무게감이 있다.

먼저 그는 일과 행복의 상관관계에 주목하며 이런 질문을 던진다. “인센티브가 세상을 돌아가게 할까?” 그러면서 적절한 금전적 보상만 있으면 일과 행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인센티브 이론의 한계를 지적한다. 사람들이 일에서 행복을 얻고 기꺼이 일을 하도록 만드는 데는 돈보다 더 중요한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는 게 동기이론이다. 그는 “사람들은 뭔가를 성취하고 배우고 의미 있는 것을 이루는 팀 안에서 자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느낌 같은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고 강조한다.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돈이나 지위 등은 행복을 부르는 원인이라기보다 행복의 부산물에 가까워진다는 것. 일거리를 찾을 때나 일을 시킬 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하는지가 중요해지는 까닭이다.

그는 인생 전략을 세우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도 적절히 이용할 정도로 유연해야 한다고 말한다. 거창한 전략을 세웠다고 해서 자금을 쏟아부으며 무작정 밀고 나갈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소형 모터사이클 시장에 진출한 일본 혼다가 좋은 사례다. 애당초 혼다는 할리데이비슨 같은 제품을 싼 가격에 내놓고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을 잠식하려는 전략을 세웠다. 그러나 혼다 브랜드에 눈길을 주는 이를 찾을 수 없었다. 사업비가 바닥을 드러내는 참이어서 판매 직원이 자잘한 업무를 처리할 때 바람도 쐴 겸 소형 모터사이클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먼지꼬리를 길게 일으키며 신나게 언덕을 오르내리는 이 소형 모터사이클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었고, 급기야 유통체인 시어스가 카탈로그 판매에 나서면서 수요가 폭발한 것. 혼다가 대형 모터사이클 시장개척 전략을 고집하고 소형 모터사이클에서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무시했다면 꿈도 꿀 수 없었던 성과다. 월마트의 성공에도 우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월마트의 성공 원인을 창업주 샘 월튼의 뛰어난 경영전략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월튼은 원래 유동인구가 많은 대도시 멤피스에 2호점을 내려고 했는데 부인이 멤피스로 이사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바람에 1호 매장 인근 벤토빌이란 작은 마을에 2호점을 열었다. 결과적으로 물류 효율이 좋아지고, 타 업체와의 경쟁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가 났는데 이는 전혀 계획된 전략이 아니었다.

그는 ‘좋은 돈과 나쁜 돈’ 이론도 거론한다. 대규모 투자를 해 단기간에 성과를 보려고 하는 ‘나쁜 돈’의 사례와 부부관계나 아이 교육 등 오랜 시간 자원을 투자해야 성과를 낼 수 있는 가정사를 비교한다. 능력이론을 바탕으로 무분별한 아웃소싱을 향해 레드카드도 꺼내든다. 획기적인 PC업체 델컴퓨터가 대만 아수스에 아웃소싱을 시작해 결국은 브랜드 외 모든 부분을 넘길 수밖에 없게 된 비극을 들려준다. 아웃소싱으로 델컴퓨터의 서류상 경영 지표는 좋아졌지만 미래의 경쟁력까지 넘겨주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성공과 행복은 상대를 향한 헌신으로 더 풍성해진다는 대목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는 서로가 상대의 입장이 돼 헌신할 때 부부관계가 돈독해지듯 가정이든 기업이든 “상대에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