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 알베르트 슈바이처, 제인 구달, 글렌 굴드, 스티브 잡스….

누구나 이름은 들어 알고 있을 이들 유명인의 공통점은 채식주의자라는 것이다. 이들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강원대 인문사회과학대 교양과정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최훈 교수도 그런 부류다. 물고기는 먹는 ‘반쪽짜리 육식주의자’인 그는 채식주의자를 자칭한다. “채식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고, 채식주의를 실천하려는 사람이 있음을 알리는 효과” 때문이다. 고향 광주에서 한우를 날로 먹는 ‘생고기’는 물론 소의 생간이나 처녑까지 육고기라면 없어서 못 먹었던 그는 어떻게 채식주의자로 돌아서게 됐을까.

《철학자의 식탁에서 고기가 사라진 이유》는 채식을 하게 된 최 교수의 개인 이야기인 동시에 채식주의의 윤리적 측면을 다룬 철학 책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 뒤에 도사리고 있는 철학적이고 윤리적인 문제를 꺼내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무겁고 어렵지는 않다. 간간이 웃음짓게 만드는 자신의 체험담에서 시작해 식탁 위 음식으로서의 고기를 포기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동물해방 운동의 대표적 이론가인 피터 싱어에 관한 책을 쓰면서 채식주의자가 됐다는 저자는 진정한 채식주의는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종교, 취향, 건강 등을 위한 채식은 신념이나 취향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개인적 선택일 뿐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올바름을 주장할 수 없고, 보편타당성을 갖지 못하는 채식주의는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기호일 뿐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채식주의가 보편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 근거 두 가지를 든다. 첫째, 동물 차별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 옳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나와 다르고, 능력이 모자란다는 이유 등으로 정당화돼 온 인종차별과 성차별, 옳다면 힘이 약한 갓난아이나 중증장애인 같은 ‘가장자리 인간’에 대한 차별도 정당화돼야 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한발 나아가 동물을 잡아먹듯이 그들도 먹을 수 있는 일이 아니냐는 것이다. 저자는 동물을 사람과 같이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버스에 탄 흑인이 피곤하면 자리에 앉을 수 있듯이 동물도 그들이 가진 본성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자는 얘기다.

채식주의의 두 번째 윤리적 근거는 ‘고통’이다. 고통은 사람이나 동물,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다. 그런데 고기를 먹게 되면 동물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들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다. 사육환경도 동물에게 고통을 안긴다. 태어나자마자 부리가 잘린 채 손바닥만한 닭장에서 사는 닭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서로 물어뜯으며 죽어나가는 돼지 등 TV 등에 비친 공장식 축산환경은 얼마나 끔찍한지 고개를 돌리게 만든다. 저자는 “결국 동물에게 유발하는 고통이야말로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하는 주된 윤리적 이유”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육식은 자연 파괴와 기아의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잘사는 나라 사람들의 육식을 위해 전 세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가야 할 옥수수와 콩 등의 곡물이 사료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들 사료 곡물 재배를 위해 아마존 같은 열대우림까지 파괴되고 있다.

저자는 채식주의의 실천 방법도 안내한다. 최대한 고통을 줄여 기른 고기만 먹는 데서 시작해 덩어리 고기를 피하고, 생선을 멀리 하면서 온전한 채식에 이르는 길을 제시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