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참 가까우면서도 여행지로는 선뜻 생각하지 않는 곳이 파주·연천 같은 경기 북부와 강원도 철원 지역이다. 남북 분단의 현실 때문이리라. 하지만 일단 이 지역을 한번 가보면 일상에서 잊고 살았던 안보의 소중함을 체감하는 것은 물론 천혜의 자연 풍광과 풍부한 역사문화 자원에 감탄사를 연발하게 된다. 파주 해마루촌에서 민통선 주민들의 생활을 엿보고, 태풍전망대에서 손에 닿을 듯 가까운 북한군 초소를 눈에 담아보자. 안보 관광과 함께 즐길거리가 다양한 것도 매력이다. 쇠꼴마을에서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천혜의 자연 풍광을 만날 수 있는 철원 고석정은 컴퓨터 게임에만 빠져 있던 아이들에게 자연과 함께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경기북부 관광 1번지, 파주

자유로를 신나게 달려 당동IC를 빠져나온다. 오늘의 첫 번째 여행지, 황희 선생 유적지를 찾아가는 길이다. 황희 선생 유적지에는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와 벗하며 지냈다는 반구정(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2호)과 그의 영정을 모셔 놓은 방촌영당(경기도기념물 제29호) 및 동상 등이 있다.

먼저 반구정에 오른다. 시원스런 임진강의 모습이 일품이다. 반구정 옆 앙지대는 반구정이 있던 옛터로 1915년 반구정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지은 것이다. 앙지대는 황희 선생의 덕을 우러른다는 의미다. 두 정자 모두 6·25전쟁 당시 소실되었지만 1967년 이후 몇 번의 개축과 증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반구정에서 내려서면 경모재가 있고 양 옆으로 방촌영당과 황희 동상이 자리잡고 있다.

황희 선생 유적지와 임진각 국민관광지는 지척이다. 차를 돌려 임진각 국민관광지로 향한다. 이곳의 필수 코스는 비무장지대 연계 관광이다. 순환버스를 이용해 비무장지대를 돌아보는 안보관광 코스는 제3땅굴과 도라 전망대, 도라산역과 통일촌을 돌아보는 A코스와 여기에 해마루촌과 허준 선생 묘를 함께 돌아보는 B코스로 나뉜다. A코스는 2시간30분, B코스는 3시간 정도 걸린다.

‘통일’ ‘안보’라는 단어에 조금은 식상해 하는 이들도 있지만 한반도의 허리가 남과 북으로 갈려 있는 현실을 직시한다면 평생에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이 아닐까. 다만 A코스를 돌아보는 셔틀버스가 평일 9회, 토일요일 15회 운행하는 데 비해 B코스는 평일주말 상관없이 1회만 운행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또 제3땅굴을 관람할 때 모노레일을 이용하는 시간대와 도보로 관람하는 시간대가 구분돼 있으니 사전에 이를 확인해 두는 게 좋다.

제3땅굴과 도라 전망대 등 우리네 분단 현실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임진각 국민관광지를 돌아보기로 한다. 일정이 빠듯하다면 ‘2005년 세계평화축전’을 열면서 조성한 평화누리공원만이라도 거닐어보자. 야트막한 언덕 위에 다양한 조형물이 있고 그 주위로 형형색색의 바람개비가 멋스럽게 어우러진 평화누리공원은 산책을 즐기기에도, 또 기념사진 한 장 남기기에도 그만이다.

황희와 함께 파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율곡 선생이다. 율곡의 흔적이 남아 있는 유적으로는 화석정과 율곡 선생 유적지를 꼽을 만하다. 임진나루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화석정은 황희 선생 유적지에서 차로 10분이면 닿을 수 있는 율곡리 임진강변에, 자운서원과 율곡 선생 가족묘가 있는 율곡선생 유적지는 자운산이 있는 법원읍에 자리잡고 있다.

화석정에서 내려다보이는 임진나루는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의주로 갈 때 배를 타고 건넜던 곳. 화석정에 올라 임진나루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이항복이 화석정에 불을 붙여 밤길을 밝혔다는 이야기가 문뜩 떠오른다. 율곡선생 유적지의 자운서원 부설 율곡전통문화학교에서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선비체험 교육도 진행하고 있어 아이들이 마냥 신기하고 재미있어 한다.

자운서원 인근 쇠꼴마을과 해마루촌도 파주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다. 쇠꼴마을은 천혜의 자연경관 속에서 허브 심기, 뗏목 타기, 농작물 수확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서바이벌 게임장과 수영장, 여행의 피로를 풀어줄 숯가마 찜질방 등을 갖추고 있다. 4인실부터 20인실까지 다양한 규모의 숙박 시설도 있어 하루이틀 머물기에도 적당하다.



◆'파주 명물' 황포돛배에 몸 싣고…철원 고석정서 임꺽정을 만나다

37번 국도로 길을 거슬러 올라 두포교차로에서 임진각을 가로지르는 전진교를 지나면 민통선 마을인 해마루촌이 나온다. 임진각 국민관광지에서 출발하는 안보 관광 코스에도 해마루촌이 포함돼 있지만, 보다 자유롭게 돌아보고 싶다면 개별적으로 찾아가는 게 낫다. 다만 민통선 안의 마을이므로 방문 전 예약과 신분증 지참은 필수. 해마루촌 주변으로는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의 묘와 조선시대 고려장을 지내던 터가 남아 있다. 농촌마을답게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두포교차로에서 연천 방면으로 조금만 오르면 두지나루다. 이곳에서는 파주의 명물인 임진강 황포돛배를 타볼 수 있다.

황포돛배는 이름 그대로 황포로 만든 돛을 단 전통 목선으로 6·25전쟁 이전에는 서울의 마포나루에서 이곳 고랑포까지 생필품과 승객을 나르던 임진강 유역의 주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적성면의 두지리선착장에서 고랑포 여울목에 이르는 6㎞ 구간을 황포돛배로 유람하는 내내 임진강 적벽과 주상절리 등 파주가 품고 있는 많은 절경들이 이어진다.

배에 오르니 시원한 강바람에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배의 움직임에 따라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임진강의 절경은 무엇 하나 놓칠 게 없다. 두지나루에서 장남교를 지나 연천 땅으로 잠시 넘어가면 신라의 마지막 왕이었던 경순왕의 능(사적 제244호)과 호로고루성터(경기도기념물 제174호)도 만난다.

경주의 거대한 왕릉에 비하면 초 라해 보일 정도로 조촐한 경순왕릉을 보고 있자니 망국의 왕이 느꼈을 비애가 온몸으로 전해오는 듯하다. 호로고루성은 경기도 지역에서 조사된 고구려 관방 유적으로 당포성, 은대리성과 함께 3대 평지성 중 하나다.

○안보여행의 메카, 연천

연천 여행의 시작은 전곡리 선사유 적지(사적 제268호)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구석기유적지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출토됐다. 유적지는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재현해 놓은 야외전시관과 출토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전곡리 선사유적관, 1981년 실시된 제4차 발굴 당시의 발굴피트를 재현해 놓은 토층전시관과 구석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체험마을로 구성돼 있다.

토층전시관에서는 구석기 유적의 형성 과정과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입체영상으로 보여주는 상영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선사유적지에서 선사박물관까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어서 이동하면 된다.

선사유적지에서 한탄강을 따라 내려가니 한탄강오토캠핑리조트가 나온다. 2008년 5월 개장한 한탄강오토캠핑리조트는 망상오토캠핑리조트에 이어 국내에서 두 번째로 조성된 국제 규격의 오토캠핑장이다. 오토캠핑장 86개, 캐러밴 25개, 캐빈하우스 16개, 어린이 캐릭터공원, 어린이 교통랜드, 야외 공연장, 생태 연못, 물놀이장, 체육시설 등 다양한 부대시설을 갖췄다. 이 때문에 매달 1일 인터넷으로 진행하는 그 다음달 이용 예약은 순식간에 끝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경기도 최북단에 있는 연천은 안보 견학지로도 유명하다. 연천에는 군부대에서 운영하는 전망대가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 중면 횡산리에 위치한 태풍전망대가 손에 꼽힌다. 이곳은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 로 휴전선까지 거리가 800m, 북한군 초소까지 거리도 1600m에 불과하다. 날씨가 좋을 땐 망원경 없이도 밭일 하는 북한 주민들을 확인할 수 있다. 태풍전망대는 민통선 안에 있지만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간단한 신원 조회만 거치면 출입할 수 있다.

부대 사정에 따라 출입이 제한될 수는 있다. 태풍전망대에 갈 때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려면 ‘중면사무소’를 검색하면 된다. 경기도 연천과 강원도 철원의 경계에 있는 백마고지전투전적비와 노동당사 역시 따로 신고하지 않고 개인 차량으로 이동해 개별 관람할 수 있으니 지나는 길에 한번쯤 들러볼 만하다.

○임꺽정의 전설 서린 철원

철원으로 가는 길에 고석정을 빼놓으면 섭섭하다. 철원8경 중 하나인 고석정은 의적 임꺽정의 전설이 서린 철원의 대표적 관광지.

짧은 현무암 계단을 내려서니 이내 유유히 흘러가는 한탄강을 등지고 서 있는 멋스러운 고석바위와 고석정이 나온다. 고석정 주변 현무암과 관련해 재미난 이야기도 전한다. 후삼국시대 궁예가 이곳 철원으로 도읍을 옮겼을 때, 현무암을 보고 ‘마치 벌레 먹은 것처럼 검은 돌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며 불길해했고, 28년 뒤 왕건에게 쫓겨 이곳 한탄강을 다시 지날 때에도 이 현무암을 보고 ‘내 운명이 다했다’고 한탄(恨歎)해서 한탄강이라 불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고석정 입구 철의삼각전적지관광사업소는 제2땅굴, 철원 평화전망대, 철원 두루미관, 월정역 등을 돌아보는 안보 견학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안보견학을 하려면 관광사업소 1층 접수처에서 출발 10분 전까지 신청서를 접수해야 한다. 하루 4회(오전 9시30분·10시30분, 오후 1시·2시30분) 운영한다.

철원군 동송읍에 자리한 도피안사도 놓치지 말자. 신라 경문왕 5년(865) 도선국사가 세운 도피안사 경내에는 도선국사가 만들었다는 국보 제63호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보물 제223호 3층 석탑이 있다. 한때 황금 개구리가 나오는 사찰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여행코스·맛집·숙소…가을 데이트하고 장단콩·송어 드세요 !

파주·연천·철원을 당일에 모두 둘러보기는 벅차다. 1박2일로 갈 경우 첫째날에는 임진각국민관광지(비무장지대 연계관광)~화석정~두지나루 황포돛배~율곡선생유적지~쇠꼴마을, 2일차에는 전곡리선사유적지~고석정 및 안보견학~도피안사~노동당사~백마고지전투전적비 코스를 권할 만하다. 2박3일로 떠난다면 첫째날에는 임진각국민관광지(비무장지대 연계관광)~황희선생유적지~화석정~해마루촌~두지나루 황포돛배~쇠꼴마을, 2일차에는 율곡선생유적지~경순왕릉~호로고루성터~전곡리 선사유적지~한탄강오토캠핑장, 3일차에는 태풍전망대~백마고지전투전적비~노동당사~도피안사~고석정 및 안보견학 코스로 둘러보면 좋겠다.

머물 만한 숙소로는 파주의 쇠꼴마을(joyr.com, 031-959-0123)과 해마루촌(haemaruchon.com, 031-952-9127), 연천의 한탄강오토캠핑리조트(hantan.co.kr, 031-833-0030)와 허브빌리지펜션(herbvillage.co.kr, 1544-3665), 철원 고석정의 한탄리버스파호텔(hantanhotel.co.kr, 033-455-1234)을 추천한다.

임진각국민관광지 안의 파주 장단콩전시관은 파주 특산품인 장단콩을 주제로 한 콩전문 박물관이다. 콩의 역사와 관련 문화, 재배기술 등 콩에 관한 내용을 다양한 볼거리와 함께 전시하고 있다. 장단콩전시관 옆의 파주시 친환경특산물홍보관(031-953-9500)에서는 장단콩을 비롯해 개성인삼, 파주으뜸살, 꿀배, 버섯 등 파주 농특산물을 싸게 살 수 있다.

여행에서 맛난 음식을 빼놓을 수 없는 일. 파주에서는 임진각한정식(031-954-6552)의 장단콩전골정식(사진), 반구정나루터집(031-952-3472)의 메기매운탕, 반구정임진강나루(031-954-9898)의 민물매운탕, 임진강폭포어장(031-959-2222)의 송어회가 유명하다. 연천에서는 허브빌리지 파머스테이블(031-833-1811)의 허브 요리를 맛보고, 철원에서는 고석정 황소마을(033-455-9299)의 숯불갈비와 고석정 송어장어회집(033-455-0015)의 송어회가 일미다.

글·사진=정철훈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