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불금 서류 놓고 `요식행위 vs 기망행위'

속칭 `마이킹 대출'로 불리는 유흥업소 특화대출을 받아 사기 혐의로 재판에 회부된 피고인들에게 같은 법원이 유·무죄로 정반대 판결을 내려 향후 항소심 판단이 주목된다.

'마이킹(선불금) 대출'이란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먼저 돈을 빌려준 서류를 담보로 잡고 저축은행이 업주들에게 대출해주는 방식을 말한다.

제일저축은행은 2008년부터 작년 6월까지 강남 유흥업소 60∼70곳의 업주 100여명에게 이 같은 방식으로 1천770억원 규모의 대출을 해줬다.

이번에 유·무죄가 갈린 두 사건도 전부 제일저축은행에서 대출받은 피고인들이 재판을 받았다.

4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염기창 부장판사)는 지난 7월 허위 선불금 서류를 담보로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14억6천여만원을 대출받은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로 기소된 이모(46)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은행이 실질적인 담보가 아니라 단지 채권채무관계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선불금 서류를 필요로 했고, 서류상 종업원이 실제 일하거나 선불금을 받았는지 여부가 대출 결정에 영향을 주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은행의 보증서 요구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 "대출에 실제 중요한 것은 월간 매출액 현황 등이고 보증서는 대출금 회수를 위한 참고자료였을 뿐"이라며 "이씨가 허위자료를 내고 은행을 속여 대출받았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같은 법원 형사합의26부(유상재 부장판사)는 최근 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같은 마이킹 대출로 18억여원을 빌린 혐의(특경가법상 사기)로 기소된 김모(42)씨와 양모(49)씨에게 각각 징역 2년6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특히 대출 과정에서 선불금 서류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앞선 재판부와는 정반대 시각에서 해석했다.

재판부는 "마이킹 대출에서 선불금 서류의 진실성 여부는 은행이 대출 결정을 하는데 판단의 기초가 되므로 김씨 등이 허위로 선불금 서류를 작성해 대출을 신청한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은행이 대출심사 과정에서 부주의한 측면이 있다고 하더라도 관련 서류가 허위라는 점을 알았다면 대출해주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망행위와 대출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