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소액주주들이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 산정으로 회사에 피해를 입혔다”며 김쌍수 전 한전 사장과 정부를 상대로 낸 총 7조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판결이 5일 나온다. 소송 규모를 떠나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정부의 직·간접적인 개입이 이뤄졌는지, 또 이 과정이 적법했는지를 판단하는 사법부의 첫 결정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게다가 전기료 현실화와 10조원이 넘는 한전 누적 적자의 책임을 놓고 정부와 한전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사법부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지 귀추가 주목된다.

◆강제 개입 vs 단순 권고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2민사부는 이날 한전 소액주주 28명이 작년 8월 김 전 사장을 상대로 낸 1400억원의 손배 소송과 지난 1월 정부에 제기한 7조2028억원의 손배 소송 1심 판결을 내린다. 두 소송은 병행심리로 진행돼 지금까지 여섯 번의 변론이 이뤄졌다. 김 전 사장의 변론은 김앤장이, 정부의 변론은 태평양이 각각 맡고 있다.

소액주주들은 김 전 사장과 정부에 대해 전기료를 원가에 못 미치게 인상해 회사의 손해를 방치한 점과 상장 기업인 한전에 원가 이하 가격을 요구하며 적정 수준의 전기요금 인상을 통제한 것을 각각 문제삼고 있다. 이들이 정부에 낸 7조2028억원의 손배 청구액은 2009년과 2010년 기준 전기료 산정 기준으로 정한 총괄원가(적정원가+적정투자보수금)에서 총수입을 차감한 것이다. 한전이 2년간 제시한 총괄원가는 78조1126억원이지만 두 차례 조정으로 이뤄진 인상률을 전기요금에 반영한 총수입은 70조9098억원에 그쳐 7조2028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주장이다.

지난 3월부터 여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변론에서 김 전 사장 측은 전기요금 인상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한전 사장의 권한이 제한적이란 점을 부각시켰고,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을 억제한 것이 아니라 물가 수준을 감안해 한전 이사회에 단순 권고안을 전달했을 뿐이라는 논리를 내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주주 추가소송 이어지나

정부와 한전 모두 이번 판결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재판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향후 전기료 책정 등 전력산업 전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만약의 경우(정부 패소)에 대비해 여러 가지 대응책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두 자릿수의 전기료 인상을 주장하며 정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한전의 고민도 커지고 있다. 김 전 사장이 소송에서 지면 소액주주들이 김중겸 사장 등 현 이사진에 대해서도 추가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한 로펌 관계자는 “정부의 공공요금 정책에 대한 사상 초유의 손배 소송인 만큼 재판부도 고심이 클 것”이라며 “전기요금 결정 과정에 정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 증거를 찾는 게 이번 판결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