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암흑기, 대한민국 고액자산가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글로벌 경기불황과 이에 따른 금융시장 침체가 가속화되면서 투자자들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다. 실질금리는 마이너스에 머문지 오래고, 부동산 침체는 계속되고 있다. 경제 저성장 기조도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들은 그동안 자신만의 재테크 경험과 노하우를 앞세워 거센 풍파를 헤쳐나가고 있다. <한경닷컴>은 자산 20~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들의 자산관리를 전담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고의 증권사 프라이빗뱅커(PB) 10명을 심층 인터뷰해 빈사 증시 생존전략의 속살을 들여다 봤다.

증시 침체기에 한국의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자산을 어떻게 지켜냈고, 어떤 금융상품에 주목했는지, 그 투자비법을 10회에 걸쳐 공개한다. <편집자 주>

"올해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가장 큰 화두는 역시 채권이었습니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장기 국채에 집중 투자했죠. 아직도 채권을 매수하려는 대기자금이 풍부합니다."

임주혁 한화투자증권 르네상스지점 부지점장(사진)은 <한경닷컴>과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최초로 발행된 30년 만기 국채에 대한 고액자산가들의 반응도 뜨거웠다"며 채권 투자를 수차례 강조했다.

임 부지점장은 2004년 프라이빗 뱅커(PB)로 발을 내딛은 뒤 명실공히 채권투자 부문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10년 가까이 임 부지점장을 찾는 '충석 고객'도 많다. 현재 관리 자산이 1800억원에 달하는 임 부지점장을 통해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을 알아봤다.

◆ "지금이 기회다" 장기국채 대거 매수

"대부분 고액자산가들은 '8.8 세제 개편안' 발표 이후 채권에 대한 관심이 더 늘어났습니다. 30년 짜리 국채의 금리는 3% 초반에 불과하지만 분리 과세시 33%의 소득 세율이 적용돼 3.67% 수준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이는 시중은행의 금리 수준이지만 비과세 혜택이 있다는 점을 노리는 거죠."

최근 장기 국고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30년 만기 국채는 20년 금리보다 낮게 결정됐다. 그럼에도 고액자산가들은 장기적으로 금리가 하향 추세로 접어들 가능성을 점치면서 장기 국채를 대거 매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10년 이상의 장기 채권은 올해 말 전까지를 매수 시점으로 보고 있다. 2013년 1월 1일부터 발행되는 채권은 3년 이상 보유한 후부터 발생한 이자와 할인액에 대해 30% 분리과세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다만 물가연동채권은 2014년 말까지 분리과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재 관심이 가장 집중된 상품이라고 임 부지점장은 설명했다.

"물가연동채권은 모든 고액자산가들이 보유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국채의 안정성을 확보한 데다 물가 상승에 따라 추가 수익도 꾀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물가연동채권은 2015년 1월 1일 이후 발행분부터 원금증가분의 이자소득도 과세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에 미리 투자해 절세효과를 누려야 합니다."

최근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다시 부각되고 있지만, 장기채권 투자에 대한 믿음은 여전히 확고하다.

임 부지점장은 "유럽중앙은행(ECB)이 무제한 국채매입을 결정한 이후 부터 채권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지만 고액자산가들은 이를 오히려 좋은 매수 시기로 여기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은 최근 1년간 1200원의 좁은 범위 내에 머무는 등 유리한 상황이고, 외국인들도 한국 국제신용등급 상향 이후 국내채권 매수세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본다"고 말했다.

◆ 주식은 '1등주'만 노린다

'안정성'을 최우선시 하는 고액자산가들은 주식 투자를 하는 방법도 다르다고 임 부지점장은 강조했다. 목표 수익률을 낮추는 대신 배당 수익률을 노린다는 설명이다.

"큰 손들은 무조건 업종내 1등주만 매수합니다. 코스피 2000선 이상에서는 주식에서 채권으로 갈아타는 경우가 많지만, 1등주 주가가 많이 하락했다 싶을 땐 매수하죠. 삼성전자가 애플과 특허소송 이슈로 7% 이상 급락했을 당시에도 일부 큰 손들은 매수에 나섰습니다. 다만 그 외에는 KT 등 종목을 중심으로 배당을 목적으로 한 투자가 많습니다."

임 부지점장이 관리하는 '큰 손' 들의 포트폴리오에서 주식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10%다. 가장 큰 비중(50%)을 차지하는 부동산의 경우 활발한 매매는 하지 않는 편이다.

임 부지점장은 "다만 주택시장이 침체돼 있는 가운데 판교와 강남 지역의 거래량이 다시 늘어나고 있다"며 "대부분 고액자산가들은 부동산을 이미 갖고 있어 신규 진입시점을 노리고 있지는 않으나 부동산 경기 바닥은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약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경우 채권 가격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관련 지표로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경닷컴 김효진 기자 ji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