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성장·긴축 논쟁을 벌이고 있는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번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와 충돌했다. 독일을 방문한 캐머런 총리가 메르켈 총리에게 “독일이 주도하는 슈퍼국가 구상으로부터 영국을 지켜낼 것”이라고 말해 긴장감까지 돌았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7일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캐머런 총리가 독일 측의 유럽 통합 강화 구상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갈등은 캐머런 총리가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이 재정위기에서 벗어날 단기 해결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하자 메르켈 총리가 유럽의 재정·정치 통합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 뒤 이어졌다.

독일은 오는 18~19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28~2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를 앞두고 유럽 각국의 정치·재정 통합을 강화하는 방안을 위기 탈출의 장기 해법으로 추진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의 통화동맹을 넘어선 재정동맹, 정치동맹”이라며 “지금보다 확대된 유럽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또 유로화 사용 국가들의 통합 작업을 우선적으로 강화하고 다른 EU 국가는 느슨한 연합체를 구성하는 ‘두 개 속도의 유럽(two-speed Europe)’ 구상도 내놓았다. “한두 개 국가가 반대해도 이를 멈출 수는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캐머런 총리는 독일이 추진하는 재정동맹이 구성될 경우 영국의 주권과 금융산업 이익이 침해받을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유로존 회원국도 아닌 영국 납세자들에게 그리스와 스페인을 돕자는 말을 할 수 없다”며 “궁극적으로 유럽 전체가 정치 통합까지 이루자는 주장은 ‘난센스’”라고 반박했다.

영국 정부는 전 유럽에 재정·금융 통합이 이뤄지고 금융거래세가 도입될 경우 세계 최대 금융도시로서 런던이 지닌 위상이 추락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해 초 독일 주도 신재정협약에도 참여하지 않았던 영국 정부가 앞으로 재정동맹 및 금융동맹 구상에도 동참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앞서 신용평가업체 피치는 스페인의 금융위기와 경기후퇴 등을 이유로 국가 신용등급을 ‘A’에서 ‘BBB’로 3단계 강등했다. 스페인 은행권의 자본확충에 필요한 금액이 600억~1000억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도 덧붙였다. 이와 함께 피치는 “미국은 AAA 신용등급 국가 가운에 신뢰할 만한 재정건전화 방침을 갖지 않은 유일한 나라”라며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을 내비쳤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