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8월, 밥 루츠는 GM 부회장으로 정식 출근하기 전에 이사회 회의에 참석했다. 앞으로 출시할 자동차들의 모형을 검토하는 자리였다. 그에겐 소형차건 대형차건 실패할 게 뻔한 것들로 보였다. “그건 정말 호러 쇼(horror show)였다.” 그는 디자인 담당 부회장에게 물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겁니까.”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도 다 마음에 안 듭니다. 정말 엉망이죠.” 그는 다시 물었다. “디자인을 총괄하는 사람이 당신 아닙니까.” 돌아온 대답은 “개발총괄 임원들이 스케치부터 생산 단계까지 모두 지휘합니다. 여기는 GM이잖아요”였다.

《빈 카운터스》는 ‘디트로이트의 전설’이라고 불리던 밥 루츠가 위기의 GM에서 벌여야 했던 ‘사투’를 그린 책이다. 현장 전문가인 저자는 숫자와 데이터로 모든 것을 움직이려는 재무 전문가들 ‘빈 카운터스(Bean Counters)’와 맞서 싸운다. 저자는 재무재표상의 비용 절감에만 몰두하는 이들 숫자놀음꾼들이 회사 운영의 실권을 쥐면서 엉터리 제품만 양산했다고 주장한다. 글로벌 자동차 제국 GM이 도요타에 추월당하고 파산보호 신청에 이르게 된 것도 이들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저자는 47년간 자동차 분야에 종사한 영원한 ‘카 가이(Car Guy)’다. 그는 GM에서 자동차업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BMW, 포드, 크라이슬러에서 부회장을 지냈고, GM을 구원하기 위해 2001년 부회장으로 복귀했다. 미국 언론은 그를 “GM을 나락에서 건져 올리고, 제품 개발에 집중하게 한 인물”이라고 평한다.

저자는 ‘기름만 많이 먹는 고장 투성이’ 차를 만드는 GM의 사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브랜드가 90개로 불어나 다 관리할 수 없을 지경이고, 플라스틱 외관으로 ‘싼 티’가 난다며 소비자들이 외면하기도 한다. 캐딜락을 가장 대중적이고 가장 고급인 브랜드로 만든다는 모순된 결정을 내려 몰락을 자초한 것도 GM이다.

저자는 디자인 중요성과 오너십 경영을 강조한다. 저자는 “디자이너가 아닌 사람들이 디자인을 결정하는 것은 싸구려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을 와인 시음회에 보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회계 전문가는 잘못된 디자인을 만들어낸 주범이었다. 그들은 어떤 차를 만들었는가보다 얼마나 비용이 적게 들었고 이익을 냈는가가 중요했다.

회계 전문가들은 온갖 수치를 동원해서 예상 판매대수와 이익을 판단했다. 숫자로 히트 상품을 개발할 수 있는 수학적 모델에 집착했다. ‘고객 니즈’를 분석한 표를 갖고 차 실내가 어떻고 문이 어떻고 비판해댔다. 결국 자동차는 앞뒤가 따로 노는 누더기가 돼 버리곤 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MBA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그는 미국의 유명 경영대학원들이 숫자만 만지작거리며 엑셀 표에 중독된 바보 같은 인재를 길러냈다고 비판한다. 분석적 경영기법만이 진리라고 여기는 사회적 편견도 지적한다. 이런 풍토에서 길러진 임원들은 비용 절감과 단기적 실적 경쟁에만 눈이 멀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무엇이든 수치로 분석하려 드는 사람들이 아니라 직감을 지닌 창의적인 인간을 길러내는 경영대학원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책은 선과 악의 대결을 그린 할리우드 영화처럼 흥미진진하다. ‘절대악’인 재무 전문가들이 지배하는 ‘디트로이트 왕국’을 정의의 사도 ‘자동차 맨’이 구원한다는 얘기다. 회계 전문가들이 읽으면 기분 나쁠 수도 있겠다. ‘기업의 경쟁력은 최고의 제품에서 나온다’는 기본원리를 역설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삼았다면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을까 싶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