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경제적인 문제로 나왔는데…. 타격이 큽니다.”

A변호사의 입이 거칠어졌다. 몇 달 전과는 말하는 투가 사뭇 다르다. 퇴직 전 1년 이상 근무한 곳의 사건을 변호사 개업 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한 전관예우금지법의 파괴력이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한다.

A변호사는 툭하면 야근에다 주말근무로 이어진 검사생활을 10여년 만에 청산했다. 전관예우금지법 시행 직후였다. 당시만 해도 “변호사 개업만 하면 호강시켜 줄게”라며 가족들에게 한 약속을 지킬 꿈에 부풀어 있었다. 수도권에서 근무했지만 법 규정 때문에 그는 지방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그러다보니 안면있는 검사들은 보기 힘들어졌다. 형사사건의 특성 때문인지 알아서 찾아오는 의뢰인도 거의 없다. 지난달은 사무실 유지에 적자를 볼 정도로 사건 수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속할 것도 불구속해주면서 검사가 좀 봐주기도 해야지…. 말발이 안 먹혀요. 1년 반짝하면 수십억은 번다고 하던데 다 옛말이 됐어요. 수임료도 조금만 세게 부르면 다른 데 가버려요. 전에는 전관이라면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전관예우를 금지한 개정 변호사법이 지난해 5월17일 시행된 지 9개월이 지났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된 이법 탓에 갓 개업한 판·검사 출신들이 기를 못 쓴다. 마지막 근무지로 서울중앙지검이나 서울중앙지법을 꺼리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다. 관할범위가 넓어 개업에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개업을 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큰 단독개업 대신 상대적으로 ‘온실’인 로펌행을 택하는 추세도 뚜렷해졌다. 로펌에 갈 경우 기존 변호사들이 있어 직전 근무지 사건을 다룰 수 있는 ‘편법’의 여지도 있다.

지난 13일 검찰 정기인사에서 12명이 퇴임했는데, 절반 이상이 로펌으로 옮겼다. 이들 검사의 새로운 둥지는 김앤장 광장 율촌 등 로펌이었다.

최근 인사에서 부장판사를 접고 서초동에 개인사무실을 연 B변호사는 그런 점에서 일대 모험을 감행한 경우다. 그는 “로스쿨에서 1500명이 변호사 자격증을 따서 나오는 첫 해인데, 내가 실험쥐가 될 것 같다”고 걱정했다. 그도 “경제력이 있으면 법원을 나올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자녀 학원비 등 경제적 이유가 개업 결심에 가장 큰 이유라는 것. 운좋게 그는 중형 로펌 두 곳에서 영입 제안도 받았다. 로펌에서 제시한 금액은 연봉의 3~4배 수준. 3억원 정도 된다는 얘기다. 이보다 더 벌고 싶다는 기대감에다 ‘1, 2년 정도는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개인사무실을 열었다지만 그의 말투에서 자신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관예우금지법 시행 직전에 법원을 나온 C변호사는 반사이익으로 쏠쏠한 재미를 본 경우다. 서울중앙지법에서 나와 서초동에서 사무실을 열었다. 그는 “사건 당사자들 입장에서는 전관과 현직은 소통이 잘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동료 판사가 전관예우금지법 때문에 수원에서 개업을 하게 됐다며 “이 법은 지나친 권리행사 제한”이라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전관예우금지법이 시행되고 있지만 판사와 검사 출신들의 의식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주변에선 “도중에 옷을 벗고 나오는 전관이 남아있는 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전관예우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