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골프 수장들과 친한 비결? 상대방 디봇 자국도 덮어줬죠"
허광수 제16대 대한골프협회 신임 회장(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한국의 ‘골프 외교관’으로 불린다. 피터 도슨 영국왕립골프협회(R&A) 회장, 마스터스를 주관하는 빌리 페인 오거스타내셔널GC 회장, 팀 핀첨 미 PGA투어 커미셔너 등 세계 골프의 수장들과 친분이 두텁다. R&A 회원이자 아시아태평양골프연맹(아·태연맹) 회장이기도 한 그가 미국 대통령도 라운드하기 힘들다는 오거스타의 첫 한국인 회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허 회장은 그러나 “오거스타 회원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마음을 비쳐서도 안 됩니다. 자연스럽게 되면 되는 것이고 저 아니더라도 다른 훌륭한 분이 되실 것”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거물급 인사들과 친분을 쌓은 비결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들은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다고 친해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하게 다가가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죠. 몸에 밴 배려가 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라운드를 하면서 상대방이 낸 디봇 자국을 대신 수리해주고 편하게 해줬습니다. 그랬더니 ‘너는 폼도 안 잡고 잘난 척도 안 한다’고 좋아하더군요.”

허 회장의 겸손과 배려는 선친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에게서 배운 것이다. 그는 “선친은 겸손의 대명사이셨죠. 남들을 모두 자신보다 낫다고 여기셨어요. 저는 어렸을 때 선친의 친구분들이 아버지보다 모두 훌륭한 줄 알았습니다. 영어를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외국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어요”라고 회상했다.

허 회장은 최근 도슨 오거스타 회장으로부터 ‘꿈의 무대’로 통하는 마스터스에 참가해달라는 초청장을 받았다. 사실 그는 2007년부터 아시아태평양골프연맹 회장을 맡아오면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오거스타에서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허 회장은 한 번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오거스타에서 라운드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오거스타에서 라운드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은 저의 초연한 태도를 매우 신기하게 보더군요. 지난해에는 ‘왜 안 오느냐’고 하길래 회장이 직접 초청하면 가겠다고 해서 이번에 가게 됐습니다.”

허 회장은 2016년 브라질올림픽 골프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일에 가장 신경을 쓴다고 했다.

“112년 만에 올림픽 종목으로 부활하는 것인 만큼 지금부터 준비를 철저히 해서 메달을 따야 합니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최고의 기량을 갖춘 선수들이 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한국의 ‘보비 존스’로 불리며 1970~1980년대 아마추어 최강자로 군림했던 허 회장은 지금도 270야드 안팎의 장타에 평균 75타의 스코어를 내고 가끔 언더파를 기록하기도 한다. 라운드도 주로 젊은 사람들과 어울린다. 지난해 R&A회원이 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축하 라운드를 가진 것에 대해 묻자 이렇게 답변했다.

“둘 다 74~75타로 엇비슷한 스코어를 냈어요. 타당 1만원짜리 스트로크 내기로 경기가 끝난 뒤 승자가 30만~40만원 정도 딴 것으로 저녁을 대접했지요. 이 사장은 컨트롤 샷을 구사하는 실력이 뛰어난 골퍼였어요.”

이 사장은 요즘에도 통화를 하면 ‘회장님과 겨뤄서 이겨야 하는데 시간을 내기가 힘들다’며 아쉬움을 토로한다고 했다.

“저는 나이가 많아 체력적인 부담이 있지만 시간 여유가 있고, 이 사장은 바빠서 라운드를 자주 못하는 약점이 있어 서로 비슷한 기량이 된듯 합니다.”

허 회장이 골프계에서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선친의 힘이 컸다. 한국인 1호 R&A회원인 선친에 이어 2호 회원이 됐고 아·태연맹 회장과 대한골프협회 회장도 모두 선친이 거친 자리였다. 그는 “선친을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선친은 한국아마추어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뒤 제가 우승해주기를 바랐어요. 저는 선친께서 바랐던 일을 거의 모두 이룬 것 같습니다”라는 말로 인터뷰를 맺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