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아찔한 다리 위에서 프로포즈해야 하는 이유
이런 낭패가 없다. 선을 보는 날인데 늦잠을 잤다. 미장원에 가기는 글렀다. 옷을 차려입을 시간도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범하게 ‘민낯’으로 나갈까. 이럴 땐 방법이 있다. 급한 대로 오른쪽 볼터치만 강조하는 것이다. 뇌의 특성을 활용한 화장법이다. 뇌는 사람의 얼굴에 민감하다. 생각만큼 얼굴을 꼼꼼하게 보지 않고 절반만 보며, 왼쪽 눈에 들어온 이미지 정보로 전체를 판단하는 경향이 강하다. 몸과 뇌는 좌우 교차로 연결돼 있어 왼쪽 눈으로 본 게 우뇌로 전달된다. 언어영역이 있는 좌뇌와 달리 우뇌는 이미지나 영상을 주관한다. 오른쪽 얼굴이 예쁘면 다 예쁘게 보이기 십상이란 얘기다.

《단순한 뇌 복잡한 나》는 이처럼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한 뇌과학 책이다. 이케가야 유지 도쿄대 교수가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 나온 다양한 실험결과에 명쾌한 설명을 곁들여 뇌와 뇌과학의 세계로 안내한다. 고등학생 눈높이에 맞춰져 있다. 저자가 모교인 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네 번의 강의를 묶었다. 그만큼 이해하기 쉽고 남는 것도 많다.

이번에는 남자 입장. 프러포즈를 해야 하는데 어디서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아찔한 다리 위에서 해야 성공 확률이 높다. 놀이공원의 으스스한 도깨비집에 가는 것도 괜찮다. 놀라거나 떨려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곳이면 어디나 좋다. 뇌의 착각을 유도하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든 가슴이 두근거리면 뇌는 상대가 매력적이라서 가슴이 뛰는 거라고 지레짐작을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해 호감을 느끼게 되며, 프러포즈에 대해 ‘예스’라고 답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저자는 일상의 흔한 경험과 뇌 이야기로 운을 뗀 뒤 조금씩 더 깊은 뇌과학 이론과 개념을 설명한다. 뇌와 마음, 인간관계를 조명하고, 자유, 배려, 차별, 올바름 등 인간의 모습을 정의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뇌와 연관돼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자신이 세운 가설을 풀어나간다. QR코드도 곁들여 책을 읽으면서 실험해보거나 실험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동영상을 볼 수 있게끔 했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