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그리스에 "재정주권 양도하라" 초강수
독일이 그리스에 2차 구제금융의 전제조건으로 ‘재정 주권’을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넘기라는 제안을 했다.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단 간 부채 탕감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가운데 그리스 사태 해결에 적잖은 영향을 줄 돌발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그리스 재정 주권 포기해”

파이낸셜타임스는 28일 유로존 재무장관회의 실무그룹에서 회람된 독일 정부 제안서를 입수, “독일이 그리스에 유로존이 별도로 설립한 ‘예산위원회’에 징세와 예산지출에 관한 권한을 이양하도록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독일 측 제안에 따르면 그리스 정부가 국제 채권단이 정한 목표에 맞지 않게 예산을 짜거나 집행할 경우 유로존이 이를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독일은 “엄격한 통제하에서만 재정이 건전해질 수 있다”며 “그리스가 지금까지 보인 실망스러운 행보를 고려하면 그리스는 특정 기간 재정 주권을 유럽공동체로 넘기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독일은 ‘채무 상환이 가장 중요한 과제며, 가장 먼저 빚을 갚는 데 국가수입을 써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법안을 그리스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에 대해 판텔리스 카프시스 그리스 정부 대변인은 “예산권은 그리스 정부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독일이 지난해 중반부터 만지작거렸던 ‘재정 주권 박탈’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내든 것은 그리스 국가부채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늘면서 구제비용도 급증할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 등의 전망을 인용, “2014년까지 그리스 구제에 필요한 비용이 당초 예상치인 1300억유로를 넘어 1450억유로에 달할 전망”이라고 전했다. 그리스 경제 회복이 계획보다 더딘 데다 지난해 11월 새 총리가 들어선 이후에도 재정긴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채 탕감 협상 기로에

독일이 갑작스레 그리스에 재정 주권 이양을 요구하면서 이번 주 중 결론을 낼 계획인 그리스 정부와 민간 채권단 간 국채 탕감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그리스 정부의 대외 신뢰도에 흠집이 나면서 대외 협상력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앞서 그리스 정부와 찰스 달라라 국제금융협회(IIF) 회장 등 민간 채권단 대표들은 기존 그리스 국채를 30년 만기 장기채권으로 교환할 때 적용되는 국채 금리를 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새 국채에 적용되는 금리가 높아질수록 채권단의 손실률은 낮아진다. 새 국채 금리가 연 4%일 경우 민간 금융권의 총 탕감비율은 70%, 연 3%일 경우 80% 정도로 추산된다. 현재 연 3.8% 수준에서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그리스 재무장관은 “국채 교환 협상을 이번 주 중 마무리하고 2차 구제금융 협상도 빠른 시일 내에 마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가 부채비율 축소 약속을 지키지 못했고 ‘재정 주권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을 정도로 심한 불신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채권단에 “더 큰 손실을 감내하라”는 주문을 관철할 수 있을지 우려가 적지 않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