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겨울 지방 대도시에 사는 A씨와 B씨는 한 동호회 모임에서 만나 술을 마셨다.

오후 10시께 A씨 소유의 그랜저 승용차에 타고 함께 이동하던 이들은 100여m 앞에서 경찰이 음주단속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음주측정을 하면 처벌을 피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A씨와 B씨는 다급히 도로 갓길에 차를 세운 뒤 내려서 전력으로 도망쳤다.

경찰은 이들을 황급히 뒤쫓았고, 한참을 추적한 끝에 술에 취한 상태였던 B씨를 체포했다.

A씨는 일단 경찰의 추적망에서 벗어났다.

B씨는 체포 직후부터 자신은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고 발뺌을 했다.

함께 도망치던 A씨가 운전한 것이라고 강변한 것이다.

도주에 성공한 뒤 술에서 깨어나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A씨도 이후 경찰 조사와 법정 증언에서 실제 운전자는 자신이었다며 B씨의 주장을 거들었다.

결국 이들의 주장대로라면 둘은 음주단속 100m 앞에서 줄행랑을 쳤음에도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하지만 법원은 B씨가 차량 운전석에서 내린 것처럼 보인다는 경관의 증언 등을 토대로 음주ㆍ무면허 운전 혐의로 기소된 B씨에게 징역형을 선고했고, 이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와 별개로 A씨도 `자신의 기억과 다르게' 거짓 증언한 혐의로 기소돼 1, 2심에서 모두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대법원 3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원심을 깨고 A씨에 대해 무죄 취지로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우선 "동일 사안을 다루는 이전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은 유력한 증거자료가 되지만, 이번 재판에 제출된 다른 증거에 비춰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면 배척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B씨가 체포된 상황상 당시 운전자 바꿔치기를 모의할 시간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하면 A씨가 허위 사실을 진술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현 기자 hapy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