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나라당의 우울한 생일
21일은 한나라당의 창당 14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렇지만 '잔칫집'의 흥겨운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창당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기념식도 조촐하게 치렀다.

홍준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창당 기념일이지만 마냥 표정이 밝을 수 없는 것은 한나라당과 대한민국 정치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또 "미래와 시대의 요구에 따라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무렵부터 바로 당을 재편하도록 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전망이 그리 밝지만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후폭풍으로 시작된 '천막당사' 시절보다 더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털어놨다.

왜 이럴까. 한나라당이 해결해야 할 정국 현안들이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부터 처리해야 하지만,야당의 강력한 반대에 막혀 있다. 전통 지지층은 처리를 압박하고 있지만,자칫 강행처리가 몰고 올 가능성이 큰 역풍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10 · 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한나라당은 꽤 의기소침해 있다. 당에 덧씌워진 부정적 이미지도 여전하다. 한 · 미 FTA 비준안이 처리되면 당 개혁 문제로 시끄러워질 것 같다. 당 내부에서는 '혁명적 수준의 쇄신'을 외치는 목소리가 높다. 소장파에서 요구한 '공천 물갈이'도 만만한 일이 아니다. 속시원한 해결책을 찾기가 여의치 않다. 당 지도부의 고민은 깊어만 간다.

게다가 '안풍(안철수 바람)'으로 상징되는 정치 신진세력의 등장으로 위기감이 더해졌다. 보수 일각에서 신당 창당을 추진하고 있고 야권에선 통합몰이를 하면서 세(勢)를 규합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세론'도 흔들리는 상황이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이러다간 내년 총선에서 살아 돌아올 사람이 몇 안 될 것"이라며 "당명까지 바꾸는 각오로 뼈를 깎는 쇄신을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좋은 뉴스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게 하나 있다. '초심'이다. 14년 전 창당 당시 한나라당이 내건 목표는 '분열 부패의 구(舊)정치 구도와 행태를 청산하는 정치혁신을 통해 국민 대통합의 선진 민주정치를 구현한다'였다. 초심을 지금 기억하는 사람이 당내에 몇 사람이나 될지 궁금하다. 해법은 먼 데 있는 게 아니다.

김정은 정치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