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실업률, `800유로 세대' 좌절과 박탈감

유럽 재정 위기는 국제금융시장을 소용돌이에 빠뜨리는 한편 유럽 국민들의 삶의 질을 서서히 떨어뜨리고 있다.

치솟는 실업률과 잦은 파업, 젊은 층과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 등이 2년째를 맞는 유럽 재정 위기의 현주소다.

유럽 경제는 물론 미국 경제도 더블 딥(이중 침체)에 빠지면서 세계 경제가 후퇴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은 유럽의 삶의 질 저하를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 그리스 = 고강도 재정 긴축이 계속되는 그리스의 실업률은 16%대로 치솟았다.

1년 전보다 5%포인트 가까이 급등한 수치다.

특히 15~24세 청년실업률이 40.1%에 달한다.

10명 중 4명이 실업자인 셈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정규직을 찾지 못해 슈퍼마켓 등에서 아르바이트해 생활하는 청년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이 하루 8시간 일해 버는 돈은 고작 30유로 안팎. 이른바 `800유로 세대(100만원 세대)가 그리스 청년층을 폭넓게 파고들었다.

관광 성수기인 지난 여름 3주간 파업을 벌였던 아테네 택시기사들 5천여명이 13일 저녁 아테네 도심의 신타그마 광장에 집결했다.

광장 건너편 의회에서 법안 심의 중인 택시 면허 자유화 법안에 항의하기 위해서였다.

면허 프리미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이들의 시위는 여느 시위들과 마찬가지로 경찰과의 물리적 충돌로 얼룩졌다.

나라 전체 노동력의 4분의 1에 달하는 공공부문은 재정 적자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모든 공무원의 급여가 지난해 연초 이래 약 20% 삭감됐다.

정부가 2015년까지 공공부문 인력 100만명 중 20만명을 줄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이행한다면 이제부턴 해고와의 전쟁에 직면해야 한다.

민간부문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리스 경제는 올해 3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도심 앞 번화가에 문을 닫은 상점들은 그리스 경기침체의 골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아무리 재정 긴축을 지속해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1.5배에 달한 정부 빚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정부의 `중기 재정 계획'이 그리스 국민의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는 대목이다.

◇ 스페인 = 긴축정책이 고강도로 진행되면서 근로자와 서민의 생활이 계속 악화하고 있다.

사회당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 정부는 이미 지난해 5월부터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한 긴축 정책을 도입했지만, 고실업률과 물가상승의 직접적인 피해자들이라 할 수 있는 중산층 이하 서민들의 고통은 더해가고 있다.

스페인의 실업률은 21%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특히 청년 실업률은 45.7%로 청년 2명당 1명꼴로 실업자 신세다.

긴축 정책으로 재정 적자 감축 목표는 어느 정도 맞춰가고 있으나 민간소비가 위축되면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고 그에 따라 중산층 이하의 삶의 질도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1.8% 감소에 그쳤던 소매판매지수가 올해엔 5.5%나 하락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스페인의 가계부채는 지난해 10년 만에 3배로 뛰었으며, 저소득층은 소득 중 부채 비율이 125%에 달하고 있다.

스페인 GDP의 16%, 구직자의 12%를 창출했던 부동산 관련업도 2010년 이후 거품이 걷히면서 서민층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달 17일에는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가톨릭 청년축제 참석차 스페인을 방문하는 데 드는 비용이 1억유로나 된다면서 수천명의 시위대가 교황의 방문 반대를 외치며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스페인 주요 노조들은 지난달 29일 정부의 재정 적자 제한 원칙에 반대하며 파업을 벌이기도 했지만, 의회는 정부의 의도대로 균형예산 개헌안을 가결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긴축정책으로 국민 신뢰가 떨어지자 내년 3월 예정이던 총선을 오는 11월20일 앞당겨 시행하기로 했지만, 보수 야당 국민당(PP)이 의회 과반을 차지하는 형국으로 향하고 있다.

◇ 이탈리아 =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가 채무위기에 몰리면서 중산층의 삶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이탈리아 통계청에 따르면 월수입 992 유로(약 149만 원) 이하의 빈곤계층이 전체 가정의 11%에 달하며, 전반적인 가계 경제 상황은 최근 3년간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정부가 새로 마련한 재정감축안은 부가가치세 세율을 20%에서 21%로 인상하고, 민간 부문 여성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65세로 연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서민들의 지갑은 더욱 얇아질 전망이다.

30%에 달하는 청년실업률이 개선될 전망도 불투명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인력의 해외 유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 최대 노조인 이탈리아노동연맹(CGIL)은 정부의 재정감축안이 서민들에게 부담을 전가하고 있다며 지난 6일 항공편과 열차, 버스, 여객선 등 대중교통수단을 멈춰 세우는 총파업을 벌였고, 노동자 수만 명이 로마와 피렌체, 제노바 등에서 거리시위에 나섰다.

저소득층과 중산층뿐만 아니라 부유층 역시 연간 소득 30만 유로 이상은 3%의 추가소득세(부유세)를 내는 부담을 안게 됐다.

◇ 영국 젊은 층 박탈감 확산 = 런던을 비롯한 잉글랜드 중북부 도시들에서는 지난 6일~9일 밤 젊은이들의 대대적인 폭동이 발생했다.

폭동의 원인을 한두 가지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젊은이들, 특히 살기 어려워진 저소득 청소년들이 폭동에 상당수 가세했다는 점에서 긴축 정책에 따른 복지예산 삭감 등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사건의 배경에 청년 실업률 상승과 복지혜택 축소, 대학 학비 3배 인상 등 보수당 정부의 긴축 정책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중도 좌파 신문인 일간 가디언은 칼럼에서 "연립정부가 정권을 잡은 이래 많은 학생 시위와 파업에 이어 거리에서 불안한 일이 생겨나고 있다"면서 "이런 일들은 제각각 다른 이유로 촉발됐지만 모두 가혹한 예산 삭감과 강제로 시행된 긴축 정책에 반대해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실제 토트넘을 포함한 해링게이 지역은 런던에서 네 번째로 높은 아동 빈곤율을 갖고 있고 실업률도 영국 평균의 2배이고, 일자리도 태부족한 지역으로 꼽힌다.

경제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폭동 가담자들의 상당수는 저소득층으로 경찰의 불심검문, 교육지원 수당 폐지 등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고 전했다.

앞서 영국 정부는 긴축정책의 하나로 대학 보조금을 줄이는 대신 대학들이 내년 9월 대학 신입생부터 학비를 연간 3천 파운드(한화 약 540만원)에서 연간 9천 파운드(1천620만원)로 인상하도록 허용해 학생들의 강력한 반발을 불렀다.

학비인상 계획이 발표되자 전국의 학생들은 지난해 말 영국에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대규모 과격 시위를 벌였고 이 과정에서 찰스 왕세자 부부가 탄 차량이 시위대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런던·파리·제네바·부다페스트연합뉴스) 이성한 김홍태 맹찬형 황정우 특파원 jungwo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