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가속 촉구' 시위 격화, 400여명 부상
대사관 직원 본국 피신…이스라엘, 미국에 보호 요청

이집트 시위대가 9일(현지시각)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난입해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호스니 무바라크 정권 붕괴 후 위기를 맞은 양국 관계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날 시위 사태로 400여명이 부상했고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들은 군용기를 이용해 본국으로 피신했다.

BBC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금요기도회가 끝난 후 시민 수천명이 민주화 시위 중심지였던 타흐리르 광장에 모여 개혁 가속화와 민간인에 대한 군사재판 중단, 총선 및 대선 일정 확정 등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 가운데 수백명은 인근 이스라엘 대사관으로 몰려가 대사관을 에워싼 방어벽을 해머로 부순 뒤 이스라엘 국기를 내려 불태웠다.

특히 시위대 30여명은 대사관 안에 있는 영사 사무실까지 진입한 뒤 사무실 안에 있던 문서들을 창문 밖으로 던지기도 했다.

이집트 경찰은 시위대가 최근 경비 강화를 위해 새로 설치된 방어벽에 기어오르는 과정에서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지만, 시위대가 경찰차에 화염병을 던지는 등 사태가 악화하자 최루탄을 터뜨리고 공중에 총을 쏘며 시위대 해산을 시도했다.

이집트 내무부는 이번 사태로 약 450명이 다쳤다고 밝혔으며, 이집트와 이스라엘 언론은 카이로 주재 이스라엘 대사 일가와 다른 직원들이 군용기를 통해 피신, 본국에 도착했다고 보도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전화 통화를 가졌으며, 이집트에는 이스라엘 대사관 보호를 촉구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 대사관 상황에 큰 우려를 표시했다"면서 "대통령과 네타냐후 총리는 문제가 해소될 때까지 긴밀한 접촉을 유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 측에 이스라엘 대사관 보호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에삼 샤라프 이집트 총리도 위기대응 각료회의를 소집했다.

친(親) 이스라엘 정책을 펴온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로 물러난 후 이집트 곳곳에서 반(反) 이스라엘 정서가 표출되면서 양국 간 관계는 점차 경색되기 시작했다.

특히 지난달 이스라엘군이 남부 도시 에일라트 인근에서 발생한 테러 용의자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이집트 경찰 5명을 숨지게 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다.

실제로 이 사건 직후 한 이집트 청년이 이스라엘 대사관에 들어가 이스라엘 국기를 내리고 이집트 국기를 게양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시위대는 약 1주일간 이스라엘 대사관 인근에서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 대사 추방을 촉구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유선 기자 ilkwang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