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너마저….'

기관투자가들이 최근 급락장에서 매도세로 돌변,증시 수급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 이달 초 투매장에서 '소방수'역할을 자임했던 기관은 지난 10일부터 변심했다. 이들은 한 달 이상 매도공세를 높이고 있는 외국인과 함께 삼성전자를 비롯해 차(자동차) · 화(화학) · 정(정유) 등 대형 수출주들을 우선적으로 던지고 있다.

충격은 시장에 그대로 전해졌다. 19일 코스피지수는 종가 기준으로 역대 세 번째인 115.70포인트 빠졌다. 유럽 재정위기 등이 글로벌 실물경기 악화로 전이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기관도 외국인의 '패닉셀링(공포매도)'에 가세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돈은 들어오지만 일단 현금 확보"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기관은 311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달 초순 1차 투매가 일단락되고 증시가 기술적 반등을 시작한 지난 10일 이후 1조2026억여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처음엔 증권 보험 등이 매도세로 돌아섰고 이번주 들어선 자산운용사마저 매물을 확대하고 있다. 연기금만이 10일부터 이날까지 3692억원 정도를 순매수했을 뿐이다. 투자자 분류상 기관은 아니지만 우정사업본부 등이 포함되는 '국가'는 이날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4293억원을 순매수했다.

주식형펀드에는 꾸준히 돈이 들어오고 있다. 주식형펀드 설정액은 10일부터 17일까지 7617억원 유입됐다. 그럼에도 자산운용사들은 주식을 팔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18일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코스피지수가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식 매입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주가가 추가 하락하기 전에 일단 주식을 팔고 현금 비중을 높여 놓자는 생각이 지배적이다"고 말했다.

이달 초 93.6%에 달했던 국내 주식형펀드의 주식편입 비중도 18일 현재 91.8%로 연중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수출기업의 하반기 실적 못 믿겠다"

기관들은 특히 전기 · 전자 자동차 조선 화학 등 대형 수출주 중심으로 매물을 쏟아내고 있다. 기관은 이날 중소형주(687억원)와 소형주(47억원)는 순매수했지만,대형주는 4127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업종별로는 자동차와 조선이 포함된 운송장비(-2407억원),화학(-1219억원),전기전자(-977억원)의 순매도가 두드러졌다.

이날 현대차(-10.97%) 현대모비스(-13.49%) 현대중공업(-10.85%) LG화학(-14.69%) 등이 두 자릿수 이상의 급락세를 보인 이유다.

한상수 삼성자산운용 전략운용본부장은 "미국 경기 부진에 대한 우려 못지않게 유럽의 재정위기가 금융위기 단계를 넘어 글로벌 실물경기를 악화시킬 것이란 시각이 최근 1~2주 새 기관의 펀드매니저들 간에 급속히 확산되는 상황"이라며 "낙관적인 매니저들도 이번 유럽 재정 및 금융위기 여파로 세계 경기 회복이 적어도 6개월은 늦춰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대형 기업들의 하반기 실적 전망도 비관적으로 바뀌고 있다. 일각에선 반도체 값 급락 등의 여파로 삼성전자는 3분기보다 4분기 실적이 더 나빠지고,하이닉스는 3분기는 물론 올해 전체로도 적자 전환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현대차는 3분기부터 실적이 꺾여 당초 7조~8조원으로 예상됐던 올 순이익이 6조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조선주는 최근 유가 급락 여파로 석유시추선 등에 대한 하반기 수주 확대 기대감이 축소되고 있다고 펀드매니저들은 분석했다.

기관은 수출주의 순매도 규모엔 못 미치지만 유통 음식료 통신 등 내수주를 일부 매입하면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 이동진 KT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내수주는 글로벌 경기 변수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아 그나마 실적 추정의 신뢰성이 높은 상황"이라며 "성장성 부족으로 그동안 외면하고 있던 통신주 등에 대한 기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