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점 영업부.창구에서 "대출을 알아보러 왔다"고 하자 대뜸 "가족 중에 아픈 분 계시느냐"고 물었다. 긴급 의료비 목적이 아니면 신규 대출이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이 직원은 "상담은 해줄 수 있지만 대출 실행은 다음달부터 가능하다"며 "지난 17일 대출중단 조치 이후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각 은행에 대출 재개를 요구했지만 농협 신한은행 우리은행 등은 여전히 대출을 내주지 않고 있다. 은행들은 대출을 재개했다가 나중에 금융당국으로부터 질책받을 수 있다고 보고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은행 "당분간 계속 중단"

은행들은 다음달 1일은 돼야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등 가계여신 업무를 정상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농협 관계자는 "지난달 가계대출 상승률이 1.4%로 당국 지침인 0.6%를 초과한데다 이달에도 증가세가 계속되고 있다"며 "일시 충격은 있겠지만 현재로선 대출중단 조치를 철회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농협은 다만 지난 17일 전국 지점에 '대출자제' 지시를 내려보낼 때부터 실수요자 대상 여신은 취급했다고 설명했다. 긴급 의료비 목적의 생활안정자금과 아파트 중도금이나 이주비 등 집단대출은 정상적으로 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농협 측은 "실수요자 대출액이 18일 하루 동안 94억원 실행되는 등 애초부터 완전히 중단했던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출심사를 대폭 강화해 신규 여신을 자제하고 있지만 처음부터 긴급한 목적의 서민대출은 취급했다"며 "이달 말까지는 가계여신을 최대한 자제한다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확인했다.

◆김석동 "초기대응 미흡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중단한 데 이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의 대출 재개 지시까지 거부하자 금융당국의 '뒷북' 대처가 사태를 키웠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는 지난 6월부터 금융회사별 일별 가계대출 증감액을 파악해왔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집무실에 관련 그래프까지 붙여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농협과 신한은행의 7월 가계대출 잔액이 전달보다 1% 이상 급증한 것을 방치했다.

신제윤 금융위 부위원장이 이날 오전 김태영 농협 신용대표와 서진원 신한은행장,김양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을 여의도 금감원으로 불러 대출 중단 철회를 주문했지만 실제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김석동 위원장은 실무진을 불러 뒷북 대응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상 징후가 보이면 초기단계에서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며 "시스템적으로 가계대출을 줄일 수 있도록 보완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조재길/류시훈/이상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