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권 조정을 전쟁하듯 해야 합니까. 조직을 위해 '직(職)'을 건다는 건 조폭들이나 하는 겁니다. "

검찰 · 경찰 수사권 조정 논란이 본격화되던 지난 5월27일,박용석 대검찰청 차장은 "직위를 건다는 자세로 임하라"는 조현오 경찰청장의 발언을 이렇게 맞받아쳤다. 하지만 그의 냉소는 한 달 만에 검찰 조직에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수사권 조정 세부사항을 검찰이 원하는 법무부령이 아닌 대통령령으로 정한다는 절충안이 통과되자,박 차장의 말이 무색하게도 '직을 거는' 검사들이 줄줄이 나왔다.

조정의 실무 책임자였던 홍만표 대검 기획조정부장과 실무팀 간부들이 사표를 낸 데 이어 김홍일 중앙수사부장 등 대검 검사장 4명도 사의를 표명했다. 일선 지검에서도 사표를 내겠다는 부장검사와 평검사가 나왔다. '줄사표' 바람은 4일 김준규 검찰총장의 '거취 정리'로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 법조계에서는 이미 한 차례 집단행동이 있었다. 로스쿨 출신을 검사로 임용할 때 로스쿨 원장추천제를 활용하겠다는 법무부의 검토안이 공개되자 지난 3월 42기 사법연수원생들 가운데 상당수가 입소식을 집단 거부했다. 이때 검찰에서는 "연수원생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어쨌든 집단행동은 참으로 보기 안 좋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자신들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이미 검 · 경 양자 합의가 끝난 사항을 국회가 뒤엎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줄사표라는 집단행동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몰두하는 모습이다. 김 검찰총장이 앞서 대통령에게 사의를 밝힌 것도 "수장이 몸을 던져서라도 법안의 국회통과를 막으려 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검찰 내부의 비판에 떠밀린 결과다.

이미 법안이 국회를 통과한 마당이어서 검찰의 줄사표는 실익 없이 국민의 눈총만 사는 모양새로 끝나간다. 검찰은 "집단 사표가 가리키는 달을 봐야지,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격인 사표만 보면 어쩌나"며 내심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어차피 사표를 내도 변호사 개업하면 되지 않느냐"는 비아냥도 적지 않게 들린다. 중수부 폐지 등 조직에 불리한 사안만 불거지면 집단행동을 무기로 삼는 검찰 스스로가 자초한 비판이다.

이고운 지식사회부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