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창업자의 딸로 한창 경영수업 중이다. 회사는 조선,자동차 부품,해양플랜트,그리고 인터쿨러를 제조하는 업체다. 현재는 필자의 책상과 의자,직책이 있지만 초반에는 몸도 마음도 편하지 않았다. 오너의 자녀라는 직원들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또 회사를 더욱 깊고 자세하기 알기 위해 직접 발로 공장 구석구석을 걸어다녔다. 부친(회장)께서도 현장경험을 충분히 쌓기를 원하셨다. 처음엔 너무 벅찼다.

회사 공장 하나가 올림픽 경기장 두 개를 합친것보다 크다. 현장 직원들은 주로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차로 이동한다. 공장을 다 돌고 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땀으로 범벅이 된다. 온실속 화초처럼 곱게 자란 필자에겐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책상 대신 현장에서 직원들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인사를 나눴다. 매점에서 아이스크림 내기,막걸리 한잔씩 돌리기 등으로 직원들과 소통했다.

하루 하루 지나면서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초반에는 호기심 반,'이러다 말겠지' 하는 편견을 가졌을 법한 직원들이 어느 순간부터 필자를 그들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친근감을 표시해왔다. 언젠가 물류공장의 반장이 필자를 배웅하며 "상무님께선 정말로 약속을 지키시는군요"라는 말을 건넸다. 처음 공장에 들렀을 때 '자주 오겠다'는 인사를 지금껏 지켜오는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가슴이 뭉클했다. 현장의 어려움을 알기에 필자는 물류공장 등 현장에 마음을 가장 많이 쓴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음료수를 데워가고,가끔 빵도 사서 그들을 격려한다.

필자가 경영에 참여하게 된 건 외국 비즈니스 파트너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우연히 빅딜을 성사시킨 '활약' 덕택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공부한 덕에 사업 외에 다양한 화제를 영어로 편하게 말했다. 피아노 연주를 하면서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었는데 매우 좋은 반응이 나왔다.

외국 비즈니스 파트너들은 "당신을 만나니 매우 즐겁다. 우정을 통해 서로 이익을 내도록 하자"며 흡족해했다. 회사 대표의 젊은 딸이 함께해 가족 같은 분위기 속에 진행된 계약과정이 그들에게 신뢰를 심어준 듯하다. 냉정하고 치열할 것 같은 경영세계에서 인간적인 접근이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경험은 필자가 경영에 더욱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이를 곁에서 유심히 지켜본 회사 중역 한 분이 경영 참여를 권유했다. 스스로도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에 회사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짧은 시간에 '회사경영은 곧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회사 일을 어떻게 맡을지 걱정하면서 정작 직책을 받고 망설였던 필자는 하루 종일 직원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동시에 회사의 새 비전을 어떻게 만들어낼지 고민하고 있다.

윤지현 < 세진중공업 상무 apriljihyun@par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