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시 백암면의 국민레미콘 공장.분주하게 손을 놀리는 50여명 직원들 사이에 한동훈(27) · 최영환(25) 예비 사무관(이하 사무관)이 있다. 이들의 업무는 콘크리트 공정 통제실의 모니터를 체크하는 것.모니터에 '강도 195㎏/㎡'라는 메시지가 떴다. 일반 주택의 축대 벽에 들어가는 콘크리트는 1㎡당 최소 180㎏의 압력을 견뎌야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195㎏/㎡는 목표를 훨씬 웃도는 수준.최 사무관은 "이곳에서 생산한 콘크리트는 4주에 걸쳐 강도 시험을 거친 뒤 출고한다"며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콘크리트가 엄격한 테스트 기준과 절차를 거친다는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사무관(행시 56회) 329명이 1주일간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난 6월27일~7월1일까지 전국 각지의 중소기업에서 근로자 체험을 한 것이다. 생산라인에서 금형작업을 마친 쇳덩이를 옮기면서 구슬땀을 흘렸고,영업사원들과 고객사를 돌며 '을'의 설움을 겪기도 했다. 오는 9월30일 각 부처에 배치되는 이들은 국내 중소기업이 가진 희망과 절박함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중소기업의 글로벌 기술 경쟁력과 열의에 감탄했지만 극심한 인력난이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걱정도 했다.

디에이치엠 생산라인에서 근무했던 박종북 사무관(27)은 "이름도 생소한 중소기업이 많은 분야에서 국산화를 이루는 걸 두 눈으로 확실히 봤다"고 말했다. 그가 일했던 디에이치엠은 산업용 고압펌프를 국산화한 업체다. 이런 회사들이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고 인력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고 박 사무관은 전했다. 분광기 개발업체 동우옵트론에서 일한 유인웅 사무관(28)과 제화업체 안토니에서 일한 이하녕 사무관(30)은 "중소기업 하면 막연하게 열악하다는 이미지만 떠올렸는데 빠른 의사결정과 탄탄한 기술력이 인상적이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예비 사무관들은 인력 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했다고 토로했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체 이오에스아이에서 현장 체험을 한 민경주 사무관(29)은 "아파트형 공장에 입주해 작업환경이 좋았는데도 구직자들이 없어 맞교대로 공장을 돌리고 있었다"며 "중소기업 인력난이 이렇게 심각할 줄 몰랐다"고 말했다.

태영공업 라인에서 공장 체험을 한 김도경 사무관(27)은 "인력을 보강하면 더 성장할 수 있는 회사지만 납기를 맞추기 위해 대표가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걸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들은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현실과 동떨어진 게 적지 않다는 점도 가감없이 전했다. 한 사무관은 "현장에 와 보니 유망 중소기업이 왜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구인난을 겪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며 "정부가 일자리-구직자 매칭 제도에 더 많은 예산을 투입해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골판지업체에서 근무했던 한 사무관은 "하루 소각량이 일률적으로 정해져 있는데 공장마다 상황이 다르다보니 불편을 겪고 있었다"며 "소각량 거래제를 도입하면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한국기전에서 일한 이주성 사무관(28)은 외국인 근로자의 쿼터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근로자 도입 비중을 늘리면 내국인들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알았는데 현실은 달랐다"며 "대한민국 산업화의 근간이 된 뿌리산업 분야의 중요성을 우리가 잊고 지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했다"고 덧붙였다.

용인=하헌형/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