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수사권 조정' 절차투명화 계기 삼길
수사권을 둘러싼 경찰과 검찰의 밀고 당기기가 한 고비를 넘은 것 같다. 현실적으로 허용돼 온 경찰의 수사개시권을 명문화하되,검사의 수사 지휘는 그대로 유지하는 쪽으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됐지만,세부적인 사항을 두고 양쪽 모두 여전히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태의 진전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혼란스러워 하기도 하고 '권한 다툼'이나 '밥그릇 싸움'으로 폄훼하기도 한다. 사법개혁의 차원에서 벌인 일이 두 기관 사이의 갈등만 키워놓은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다.

이번 수사권 조정이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무엇보다 수사 절차의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수사에 본격 나서기 전에 은밀하게 진행되는 내사(內査)야말로 차제에 꼭 짚어 보아야 할 영역이다. 개인에 대한 내사가 몇 년째 계속되는 걸 중단시킬 방도가 없느냐,내사를 핑계로 남의 통화기록을 계속 뒤져 봐도 되느냐는 등의 피해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내사는 수사 착수 이전의 준비 활동이다. 통상적으로 내사단계에서는 비슷한 경우에 적용된 법 조항이나 사건 처리 선례를 검색하기도 하고,수사대상 기업의 재무제표와 같은 공시자료를 열람해 보기도 한다. 수사에 협조하는 사람의 진술을 들어보는 것도 내사활동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 관련된 사람들끼리 통화한 내역을 확인하거나 예금거래 내역,세금납부 자료를 확인하는 단계로 발전하면 그때부터는 수사가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

비록 내부적으로 입건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명목상 내사사건으로 분류돼 있다 하더라도,그 실질이 수사라면 수사와 똑같은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경찰의 내사는 물론,검찰이 벌이는 내사에 대해서도 사법적 통제에서 벗어난 영역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관련 규정을 다듬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왕에 수사지휘체계를 개선하겠다면 수사절차의 투명성과 함께 수사의 효율 문제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수사권을 둘러싸고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사태를 보고 있노라면,앞으로의 범죄수사가 과연 제대로 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혐의자를 상대로 벌이는 두뇌싸움이라 할 수 있는 범죄 수사에서 유죄를 받아내고 죄값에 상응하는 형을 받아내기 위해서는,범죄 현장에 즉각 달려갈 수 있는 경찰과 법률적으로 무장된 검사의 협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지휘의 범위를 둘러싸고 티격태격해서는 서로간의 소통이 단절될 수밖에 없고 그런 분위기에서는 원활한 협업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난날 몇 차례 수사권 조정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될 때마다 경찰과 검찰의 소통은 싸늘하게 경직되곤 했다. 서로간의 소통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온 지휘가 제대로 먹혀들 리가 있겠는가. 검사는 머리를 싸매고 고심 끝에 내렸지만 소통 없이 수사기록에만 의존하다 보니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겉돈 지휘도 있었다고 본다.

지휘를 둘러싸고 생기는 이런 갈등의 해소는,아무래도 지휘를 받는 사람보다 지휘를 하는 쪽에서 풀어나가야 할 것이다. 수사 경찰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시시콜콜 간섭하는 듯한 지휘를 하거나,수많은 미제를 떠안고 한정된 인력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뛰고 있는 고충을 헤아려 주지 못했던 적이 없었는지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업무처리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충정에서 그랬다 하더라도 상대방에 대한 인격적인 대우가 결여된 언사를 한 적이 없었는지도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수사권 조정을 계기로 소모적인 논쟁이나 자존심 싸움은 자제하고,경찰과 검찰 모두 한 단계 성숙된 자세로 서로간의 소통이 하루빨리 복원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 객원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