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 다 신용불량자 처지라 은행 대출은 꿈도 못 꿨습니다. 자금이 없어 노점상을 전전하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미소금융을 찾아갔습니다. 음식에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

서울 망원동 월드컵시장 입구에서 '엿장수'라는 간식전문점을 하고 있는 승영록(50) · 용은영(44) 씨 부부.강원도에서 단돈 7만원을 들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던 5년 전이 까마득하다고 했다. 이 부부는 지난해 9월 포스코미소금융의 도움을 받아 창업의 꿈을 이뤘다. 33㎡(10평) 남짓의 작은 가게지만 한 곳에 정착할 수 있고 매일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있다는 게 꿈만 같다고 말했다.

◆아이 셋 놔두고 서울로

승씨 부부는 원래 강원도 홍천에서 채소 도 · 소매업을 했다. 외환위기 이후 거래처 주문이 20~30%씩 줄면서 위기가 닥쳤다. 2000년대 들어 구제역 · 조류독감 등 악재가 한꺼번에 터졌고 거래처들은 줄도산했다. 결국 2005년 카드빚을 내 직원들의 인건비를 정리하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아이 셋을 홍천에 떼 놓고 7만원을 들고 상경했을 때는 정말 눈 앞이 깜깜했습니다. 처음에는 길거리에서 옥수수를 삶아 팔았는데 자릿세를 수십만원씩 내라고 하더라고요. 강원도에서는 남의 집 앞이든 가게 앞이든 아무 곳에서나 장사해도 모두 그러려니 하는데….서울 인심이 참 야박했습니다. "

승씨 부부는 2006년 닭 꼬치 요리를 배우고 포장마차를 시작했다. 가게 앞자리만 쓰는 데도 월세가 100만원이 넘는데다 주인의 요구에 따라 수시로 장소를 내줘야하는 불안정한 생활은 여전했다. 1년에 다섯 번도 넘게 자리를 옮겨다녔다. 잘 된다 싶으면 자릿세를 터무니 없이 달라고 하거나 쫓아내기 일쑤였다.

"사채는 죽었다 깨어나도 안 쓸 거라고 아내와 약속했어요. 채소 도매업을 정리할 때 카드 돌려막기를 해봐서 그 고통을 잘 알죠." 고민하던 이들 부부는 지난해 8월 포스코 미소금융 서울지점을 찾았다. 임차보증금 3000만원을 대출받고 그동안 모아온 자금으로 시설비용 등을 충당해 엿장수를 차릴 수 있었다. "정말 대출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안했는데 창업임차자금 지원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해서 멍하니 있었죠.신용회복지원을 받아 5년 동안 성실히 갚아나가고 있었는데 심사과정에서 이 점을 높이 평가한 것 같습니다. "

◆"손님들도 내 식구 같아"

승씨 부부가 운영하는 엿장수는 닭 꼬치,와플 등을 판매하는 간식전문점이다. 와인과 치즈를 곁들여 만든 닭 꼬치 '와닭',고기산적으로 떡을 감싼 '떡심이',와플에 떡갈비를 곁들인 '와벅',음료와 치킨 볼이 나오는 '음치' 등 독특한 간식거리를 팔고 있다.

유난히 중 · 고생 단골이 많다. 부모 같은 마음으로 학생들을 대하는 게 단골 확보의 노하우라고 했다. "학생 손님들이 꼭 우리 아이들 같아서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하기보다는 못 먹게 하는 게 더 많아요. 맵고 튀긴 음식을 먹고 속 쓰려 하면 내 마음이 더 아프거든요. 먹고싶은 것을 안 주는 데도 아이들은 친구들까지 데리고 가게를 더 와요. "

승씨 부부의 지난달 매출은 700만원대.성수기인 7~8월에는 1000만원대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직 이익이 많이 남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골이 늘고 있어 사정이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이제 갑작스럽게 자리를 옮겨야 할 필요가 없으니 열심히 일하고 경기만 좀 더 좋아지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포스코미소금융재단은 서울,포항,광양,인천에 4개 지점을 운영하며 승씨 부부와 같은 730여명 골목 사장님의 창업을 지원했다. 대출조건은 한도 500만~5000만원에 금리 연 4.5% 수준,이제까지 총 대출금액은 79억원이다.

"담당 부장이 세무,회계 등 어려운 내용을 친절하고 알기 쉽게 가르쳐 줘서 창업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처음 6개월간 매주 찾아와 문제나 어려움은 없는지 용기도 북돋아주고,대출금을 성실하게 갚아나가면 운영자금을 또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1년 후에 꼭 찾아오라고도 하셨어요. "

승씨는 비록 낮더라도 이자는 이자이기 때문에 가급적 다시는 미소금융을 찾지 않을 각오라고 했다. 자립하려고 노력해야지 기대려고 하면 의지가 약해진다는 생각에서다. "그래도 사람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포스코미소금융이라는 기댈 언덕이 있어서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걱정이 많이 줄었습니다. "

이유정 기자 y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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