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경기도 수원시 소재 D산업에 근무하는 김모씨(42)는 프레스작업 도중 손목이 절단되는 대형사고를 당했다. 프레스 금형1차 세팅을 마친 뒤 제품을 옮기는 과정에서 장갑이 미끄러졌으나 오른손을 미처 빼지 못해 손목이 프레스 금형에 눌려 절단된 사고다.

공업고등학교 졸업 후 20여년 넘게 기름밥을 먹어온 김씨는 이 분야에선 베테랑이지만 잠시 부주의한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재해를 당했다. 안타까운 것은 프레스 기계에 안전장치만 설치돼 있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후진국형 재해였다는 점이다. 그는 아직도 병원에 다니면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지만 숙련된 기술자로서의 능력은 이미 잃어버렸다.

지난해 1월 부산시 소재 자동차 부품 업체인 H기업에 근무하는 박모씨(54)도 작업 도중 아차 하는 순간 오른손 검지와 중지,약지 등 손가락 3개가 기계에 끼여 으스러지는 사고를 당했다. 양수페달로 프레스 작업을 하던 도중 왼손으로 잡아야 할 자석집게를 작업하기가 불편하다며 무심코 오른손으로 바꾸다가 벌어진 재해다.

박씨는 이 분야에서 30년 넘는 경력의 숙련공이지만 순간의 부주의가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도록 만든 것이다. 이 사고도 프레스 기계에 안전시설만 갖춰져 있었다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던 재해다.

근로자들의 안전의식 부족과 산업기계의 안전설비 미비로 산업현장에서 기계재해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2009년 전체 재해 건수 9만7821건 가운데 29.1%가 산업기계에서 발생한 재해다. 산업기계 재해를 종류별로 보면 손가락 등이 기계에 끼이거나 휘말리는 협착 · 끼임재해가 42.8%(1만2185건)로 가장 많고 충돌 · 접촉재해 30.3%(8619건),추락 · 낙하재해 11.6%(3296건) 등의 순이었다.

이들 중 상당부분은 안전설비만 제대로 갖추면 막을 수 있는 후진국형 재해다. 실제로 원인별 기계재해를 보면 안전설계 미흡,방호설비 미설치 등 기술적 원인이 73.5%(2만904건)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다음으로 작업 중 부주의,미숙련공 배치,관리감독 부재 등 관리적 요인이 23.9%(6797건)였다. 보호설비만 갖춰도 재해의 70% 이상은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계재해가 빈발하는 이유는 기계안전에 대한 허술한 규제가 첫째 요인으로 꼽힌다. 기계재해의 40%는 프레스 지게차 연삭기 등 15개 종류의 기계에 의해 발생하지만 규제 대상은 프레스 크레인 절단기 등 3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규제 없이 무방비 상태에서 사용된다. 전체적으로도 설계,제조할 때 안전성을 의무적으로 확보해야 하는 기계는 의무안전인증 8종,자율안전확인신고 3종 등 11종에 불과하고 나머지 수백 종의 기계는 아무 규제 없이 제조,사용되고 있다.

기계 제조업자에게 안전설계,제작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사용 기업에만 방호장치 설치 등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김종윤 산업안전보건공단 안전인증실 부장은 "안전장치 없는 기계를 구입해 쓸 경우 사업주는 별도의 안전장치를 만들기에 한계가 있다"며 "제조업자에게도 안전장치 설계,제조에 대한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전장치가 없는 기계를 선호하는 이유는 제품 원가가 싸기 때문이다. 안전장치를 할 경우 원가가 평균 20% 정도 더 소요돼 기계 공급자나 수요자 모두 사용을 꺼려한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최근 사업주를 대상으로 안전설비를 갖춘 기계를 구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높은 가격(46%)과 사용 불편(37%)을 주로 꼽았다.

많은 기업들은 기계의 안전장치보다는 작업자의 안전수칙 준수,안전점검 등에 의존해 산재 예방에 나서는 셈이다.

김 부장은 "기계재해 중 80% 정도가 안전인증 적용을 받지 않는 일반기계에서 발생한다"며 "모든 기계에 인증제도를 적용하지 않더라도 유럽처럼 기업주 스스로가 안전성 평가를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