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말부터 95년 초 미국에서 허시파피는 완전히 한 물 간 상태였다. 연간 판매량은 3만 켤레 안팎.벽지 아울렛에나 가야 찾을 정도였다. 제조사 울버린은 1970~80년대 히트상품으로 회사를 유명하게 만든 이 캐주얼화를 단계적으로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신발이 뉴욕 맨해튼 도심 클럽과 술집에 등장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패션디자이너 아이작 미즈라히가 신고 있다는 말도 들렸다. 존 버트렛을 비롯한 디자이너들이 콜렉션에 사용하겠다고 나서더니 코미디 배우 피위 허먼이 주문했다.

1995년 허시파피는 43만 켤레나 팔렸고 다음해 매상은 4배로 늘었다. 남과 다르게 보이려던 맨해튼 청소년 몇이 일으킨 바람이 디자이너 두 명과 배우를 거치면서 태풍으로 변한 것.유행은 이처럼 작은 데서 출발,우연히 생겨난 입소문이 순식간에 번지고 불어나면서 생성된다.

유행은 돌고 도는 걸까. 국내의 경우 도심에선 구경조차 어렵던 고무장화가 살아나 새로운 패션 아이템으로 떴다. 이름은 레인부츠.LG패션과 금강제화 등 에서 내놓으면서 형형색색에 굽이 달리는 등 디자인도 다양해졌다.

대상도 유 · 초등생에서 20~30대 젊은 여성들로 바뀌었다. 백화점에선 작년보다 배 이상 팔리고,인터넷쇼핑몰에서도 30% 이상 판매가 늘어났다고 한다. 우비(레인코트)와 눅눅한 장화 속을 말려준다는 신발 탈취제 등 연관상품까지 덩달아 불티난다는 마당이다.

장화는 지금도 농촌에선 필수품이다. 모내기 때는 물론 밭일을 할 때도 질퍽질퍽한 땅을 오가자면 장화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도시에선 20세기 유물처럼 여겨졌었다. 골목골목 모두 포장되면서 어른은 물론 아이들조차 신지 않았다.

그러던 장화가 되살아난 데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연예인들이 신은 데서 비롯됐다,국내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면서 폭우가 잦아진 탓이다,구두가 젖고 발이 불어 고생하느니 장화를 신는 게 편해서 그렇다,반바지에 잘 어울린다 등.

실용성과 모양이 더해진 결과라는 게 중론이지만 실용성만 생각하면 안살 것 같다는 의견도 있다. 발은 안젖지만 공기가 잘 안통해 무좀 위험이 도사리고 냄새 나고 ,무엇보다 무겁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쁘다며 산다고 한다. 유행의 마술이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