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판사들 많습니다. (퇴임 후 수임 제한 기간을) 2년까지는 묶어놔도 괜찮아요. "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사개특위)에서 전관예우 근절방안을 담은 변호사법이 지난 주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1일 판사 출신 K변호사(43)를 만나 전관예우에 대한 실상을 들어보았다. 사개특위는 판 · 검사 출신 변호사가 퇴직 1년 전 근무처의 사건을 퇴직 후 1년간 수임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K변호사는 "1년으로는 모자란다"고 목청을 높였다. 법원에서는 1년마다 인사이동이 있다. 1년마다 새로운 퇴직자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개업 후 1년 이내'가 전관 약발이 가장 잘 먹히는 때다. 하지만 전관예우 근절차원이라면 이 기간을 얼마든지 늘려도 된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서울과 지방에서 판사생활 9년 만에 법복을 벗고 6년 전 로펌에 들어간 K변호사가 들려준 전관예우 실태와 판사들의 문제점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K변호사에 따르면 흉악한 살인사건 등 누가 봐도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는 사건에는 전관이 끼어들 틈이 좁다. 그러나 판사가 재량권을 갖는 사건이 있다. K변호사는 '경계선에 걸리는 사건'이라고 표현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사건이 있어요. 판사도 고민될 것 아닙니까. 그때 법원 출신의 아는 변호사가 한쪽 결론을 가지고 설득하고 논리도 그럴듯 하면 그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높지요. " 그의 말대로라면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이다. 전관은 유죄를 무죄로 바꾸기는 어렵지만 양형을 줄이는 정도는 손쉽게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K변호사는 양형기준법을 만들겠다는 사개특위안에 찬성이다.

K변호사에 따르면 의뢰인에게 가장 인기 있는 전관은 '형사부 부장에서 그만두고 단독개업한 변호사'다. 형사부의 경우 보석 징역 등 인신구속과 관련된 사건이 대부분인 데다 정상참작을 이유로 한 감형 등 판사의 재량권이 크기 때문."형사부 부장판사 출신의 경우 통상 퇴직 후 1년 동안 수임 건수가 최소 50건은 넘고,지방에선 200건까지도 가져갑니다. 모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출신은 하루에 4건씩 수임한다는 얘기도 있어요. "

실제 올 2월 서울중앙지법에서 퇴직한 형사부 부장판사 출신의 H변호사 사무실을 기자가 방문해 봤다. 개업한 지 2개월밖에 안됐는데도 쌓아둔 사건서류가 20건은 넘어 보였다. 일반 변호사들이 1년에 형사사건 1건을 수임하기 어려운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이 경우 혼자서 사건을 끌어오거나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무장을 가장한 브로커가 끼어들기도 한다. 건당 단가에서 차이가 나는 대법관 출신을 제하면 수입 면에서도 형사부 부장 출신이 단연 으뜸이다.

"형사부 부장판사하다 개업하면 첫해에 20억~30억원까지도 법니다. 차츰 수입이 줄기 때문에 저는 안정적인 로펌을 택했고요. " K변호사의 말이다. 이용훈 현 대법원장의 경우 대법관을 그만두고 5년간 변호사 생활로 50억원을 벌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개업 1년여 만에 100억원이 넘는 수임료를 번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전관예우만큼이나 검은 커넥션이 또 있다. 바로 '인맥'이다. 부장판사와 고교나 대학동창인 변호사의 위력은 사건 의뢰인들이 더 잘 안다. 변호사 선임계도 내지 않고 법정 밖에서 "잘 봐달라"며 후배 변호사에게 부탁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 점은 K변호사가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는 대목이기도 하다. 최근 사건 관계자를 만나 수임하기 위해 그가 내민 카드가 바로 "대학동창인 부장판사가 ◆◆법원에 많다"는 거였다.

전관예우는 모럴해저드에 빠진 판사 사회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K변호사가 과거 가압류담당 판사로 있던 시절 얘기다. "가압류 사건은 신속하게 처리해줘야 하는데 토요일마다 출근하지 않는 동료판사가 있었어요. 민원인들은 담당판사 어디갔느냐고 아우성치고,그래서 사건을 다 저에게 가지고 왔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토요일마다 골프치러 다녔다고 하더군요. 대부분 대접받는 골프였어요. " 최근 뇌물로 구속된 고등법원 J부장판사 사례도 이런 맥락에서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게 K변호사의 분석이다. 국회 사개특위가 법조계의 이런 비리사슬을 얼마나 잘라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병일 기자 k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