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 내려야 할 때…발목 잡힌 시정 방치 못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일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하자고 제안한 것은 무상급식 문제로 장기간 이어져온 갈등을 주민투표라는 '최종 수단'을 통해 조속히 매듭짓자는 취지로 풀이된다.

즉, 무상급식을 둘러싼 서울시와 시의회의 갈등이 별다른 진전없이 장기화되는데다 외부에서 양측을 중재할 여지도 없는 만큼 서울시와 시의회의 실질적인 주인인 시민의 뜻을 물어 결정하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무상급식을 이유로 시의회에 계속 발목이 잡힐 경우 향후 남은 임기 3년반 동안 시정을 제대로 이끌어가기 어려운 만큼 주민투표라는 카드로 '승부수'를 걸겠다는 오 시장의 결단도 담겨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시의회는 오 시장의 제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주민투표를 통해 갈등이 봉합될지 여부는 아직 불투명하다.

◇풀리지 않는 '무상급식' 관련 갈등 = 무상급식은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소속 오 시장이 재선에 성공하고 민주당이 시의회 의석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소야대'의 형국이 되면서 양측 간 치열한 갈등이 예견된 사안이다.

선거 당시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측은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으나 오 시장은 "학교폭력, 사교육, 학습준비물 없는 3무(無) 학교를 만드는 게 우선이다"며 무상급식 단계적 실시 입장을 고수했다.

양측의 갈등은 8대 서울시의회 민주당측이 출범도 하기 전인 지난해 6월 서해뱃길 사업의 시작인 양화대교 상판 철거공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며 가시화됐으며, 이후 시의회가 서울광장에서 집회ㆍ시위를 허용하는 내용의 서울광장 조례를 통과시키고 서울시가 재의 요구로 맞서면서 본격화됐다.

이어 시의회 민주당측이 올해부터 초등학교에 무상급식을 전면 실시하는 내용의 조례안을 통과시키자 오 시장이 시정협의 중단을 선언해 시의회가 파행하는 사태가 벌어졌으며, 시의회 민주당측은 단독으로 예산안을 처리하고 시정질문에 불출석한 오 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는 등 갈등이 계속 증폭됐다.

더욱이 서울시가 시의회에서 재의결해 이송한 조례를 시한인 지난 4일까지 공포하지 않자 시의회는 이틀 뒤 의장 직권으로 조례를 공포하는 등 양측의 갈등이 해결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은 채 장기간에 걸쳐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시정 교착상태 방치 불가"…주민투표 '승부수' = 오 시장은 이에 따라 무상급식때문에 교착 상태에 빠진 시정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만큼 무상급식 전면 실시 여부를 시민들의 판단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오 시장은 작년 12월7일 민주당측에 무상급식을 주제로 TV공개토론을 열자고 했으나 거부당했고, 이번에 주민투표라는 '승부수'를 꺼내든 것이다.

오 시장은 "무상급식 하나에 발목이 잡혀 교착상태에 빠진 서울시정을 이대로 방치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서울의 미래와 시민의 삶이 무참히 외면당하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기에 전면 무상급식 시행 여부에 대한 시민 여러분의 뜻을 묻고자 하는 것"이라고 제안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시의회 민주당측은 지난해 12월30일 의결한 서울시 예산에서 무상급식(695억원), 학습준비물 지원(52억원), 학교시설 개선 지원(248억원) 등 75건 3천708억원을 일방적으로 증액하고 시의 역점사업인 서해뱃길(752억원), 한강예술섬(406억원) 등 197건 3천966억원을 삭감했다.

오 시장은 "전면 무상급식을 수용하지 않는 데 대한 보복성으로 시의회가 삭감한 핵심사업 예산이 220건 3천912억원에 이른다"며 "서해뱃길 사업, 한강예술섬 사업, 어르신 행복타운 건립, '문화와 예술이 있는 서울광장' 등 예산이 삭감된 것은 시민 삶 전체와 직결된 문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오 시장은 "올해 국가 예산이 309조원인데 민주당이 내놓은 무상급식과 무상의료, 무상보육, 1/2 등록금까지 공짜 시리즈에 들어가는 비용은 전국적으로 연간 24조3천억원에 달한다"며 민주당 복지정책 전반을 '망국적 무상 쓰나미'라고 비판했다.

◇시의회 "제안 거부"…투표 실현 여부 '미지수' = 시의회 민주당측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오 시장의 제안을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의회 민주당은 "이번 제안은 이미 통과된 조례와 예산에 대한 월권행위다"며 "시행을 눈앞에 둔 정책을 놓고 투표를 하자는 것은 무책임한 정치공세"라고 주장했다.

또 "현행 주민투표법에 따르면 예산에 대한 내용은 투표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비용도 수백억원이 예상되는 투표를 시민들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강희용 의원은 "주민투표를 총괄해야할 시장이 투표를 발의하는 것은 청구인의 적격성에 문제가 되는 등 주민투표법 상 불가능한 상황이다"며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이슈를 만들고자 이번 카드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시의회 민주당은 "의회를 무시하는 오 시장의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며 "개인적 대권행보는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시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시의회와의 관계 복원에 나서기 바란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조성흠 기자 jos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