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8월10일.신한금융지주와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들은 침을 삼켰다. LG카드 입찰 결과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신한금융의 승리.이를 계기로 신한금융은 승승장구했다. 총 자산 310조원(9월 말 현재)을 가진 3대 금융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신한금융의 선례를 지켜본 금융회사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국내 금융산업 판도를 또 한번 바꿀 우리금융지주 예비입찰을 앞두고 있어서다. 하나금융이 인수 · 합병(M&A)시장의 주도권을 쥔 형국이지만,다른 주체들도 이번엔 밀릴 수 없다는 의지가 역력하다.

◆승부수 던진 김승유 회장

"외환은행이 좋은데 론스타가 너무 비싼 값을 부른단 말이야."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은 지난 6월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금융보다는 외환은행이 매력적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이후 하나금융의 공식 반응은 "우리금융에 관심 있다"였다. 외환은행은 호주 ANZ은행으로 팔리는 듯 보였다.

하나금융은 물밑에서 바빴다. 계속해서 외환은행 인수를 탐색했다. 기회는 왔다. 몇 번의 접촉 끝에 지난 9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업설명회(IR)에서 의견접근을 봤다. 일사천리였다. 하나금융은 13일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15일부터는 외환은행 실사에 들어갔다. 이 사실이 알려진 16일 김 회장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라며 섣부른 예단을 경계했다. 하지만 18일엔 "우리금융 인수의향서 제출 전날인 25일까지 결론내릴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우리금융보다는 외환은행에 확실히 기울었다는 얘기로 들렸다.

김 회장의 이런 행보는 다분히 LG카드 인수전의 학습효과로 풀이된다. LG카드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김 회장은 45년 금융인생을 건 승부수를 던졌고 승리할 가능성도 상당하다는 게 금융계의 관측이다. 한 관계자는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작업은 8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우리금융 "6조원 모아놨는데…"

김 회장의 '영리한 행보'에 허를 찔린 곳은 우리금융이다. 이팔성 회장은 "민영화의 판을 깨서는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금융은 독자생존을 목표로 기업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기업 컨소시엄이 우리금융을 인수한다는 방침이다. 우리금융은 거래 기업 등으로부터 6조원 이상의 투자의향서를 받았다. 물론 주도적인 기업이 나타나지 않는 등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나금융과 맞붙을 경우 승산이 충분하다는 게 우리금융의 판단이었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하나금융이 오는 26일 마감되는 우리금융 예비입찰에 불참할 경우 입찰은 무산될 가능성이 상당하다. 금융위원회는 "4% 이상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참여자가 복수일 경우 유효경쟁입찰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경영권을 인수하려는 주체와 소수 지분만을 사려는 주체를 동급으로 취급하는 건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KB금융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어윤대 KB금융 회장은 "1~2년간은 M&A 여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금융 입찰이 무산될 경우 결국 KB금융에 구애를 할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는 게 금융감독당국 관계자의 말이다.

◆가열되는 광주 · 경남은행 인수전

광주 · 경남은행 인수전도 불꽃을 튀기고 있다. 전북은행은 사모펀드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광주은행 입찰제안서를 내기로 했다. 중국최대은행인 공상은행도 광주은행 인수의사를 밝혔다. 공상은행은 단독으로 광주은행을 인수하기보다는 전북은행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경남은행 인수를 두고는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의 샅바싸움이 한창이다. 부산은행은 경남은행 지분 100% 인수를,대구은행은 광주 · 경남은행 인수 후 지방은행 공동지주회사 설립을 내세우고 있다.

한 전직 은행장은 "은행들이 M&A를 통해 몸집을 불리는 것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이럴때일수록 정부는 심판역할을 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부 금융팀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