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평소 지인들에게 "내가 삽질만큼은 대한민국 1%에 들 정도로 자신있다"고 말하곤 한다. 젊은시절 수배를 피해 전국을 누비며 막노동부터 광부노릇 등 해보지 않은 일이 없을 정도로 경험이 많아서다. 2007년 경기지사를 끝낸 직후 100일간의 민생대장정에 나섰을 때도 강원도 함백탄광에서부터 전라도의 어촌마을까지 전국을 막노동으로 누비며 온몸으로 부대꼈다. 2년2개월여의 춘천 칩거 중엔 직접 닭을 기르며 촌부처럼 마을 이장 등 이웃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강원도가 손 대표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도 '제2의 고향'처럼 지냈던 인연 때문이다.

지난 3일 민주당의 새 사령탑에 취임한 손 대표의 일성은 '국민 속으로'다. 당직 인선도 뒤로 한 채 연일 민생현장을 찾고 있다. 한 측근은 "손 대표가 민주당 대표를 하려고 춘천에서 나온 게 아니지 않느냐"며 "당직보다는 국민들의 삶 속으로 적극 다가가는 게 더 중요한 때"라고 말했다. 대표의 '복심'을 전하는 대변인과 사무총장 외에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은 물론 정책위의장 민주정책연구원장 등 주요 당직을 모두 중립적인 인사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명직 최고위원에 영남출신의 486 출신 김영춘 전 의원을 임명한 것도 486을 포용하기 위한 포석이란 분석이다.

지난 5일 손 대표는 첫 민생 일정으로 강원도 평창의 고랭지 배추밭을 찾았다. '배추 정국'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식탁 물가가 뜨거운 이슈로 등장한 점을 감안한 것이다. 농민들의 고충을 직접 수첩에 받아적을 정도로 그는 메모광이다. 그는 현 정부의 친서민 정책에 대해 "말뿐이었다"고 각을 세운다. 연일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7일에는 대전 중앙시장을 찾아 서민물가를 점검했다.

손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두 가지 측면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원외라는 핸디캡을 민생행보로 극복하는 차원이다. 정기국회가 열리고 있는 상황에서 원외 대표의 보폭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서다. 다른 한 가지는 2012년 대선에 모든 방점이 찍혀 있다는 점이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대선을 향해 전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 속으로 들어가 지지를 이끌어내 차기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게 손 대표의 구상이다. 실제 일부 여론조사에서 손 대표 지지율이 두 자릿수로 올라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최근의 민생행보와 맞물려 추가 상승여력이 있다는 게 손 대표 측의 분석이다. 민생행보를 한층 강화할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한 관계자는 앞으로 6개월을 승부처로 꼽았다.

물론 색깔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는 여전하다. 진보를 추구하되 중도를 잡겠다는 손 대표로선 고민스런 대목이다. 당장 정동영 천정배 조배숙 최고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과 이정희 민주노동당,조승수 진보신당 대표 등 야 4당의원 32명이 공동명의로 이날 '한 · 미 자유무역협정(FTA)재협상' 성명서를 발표했다. 손 대표의 입장을 요구하는 압력도 거세질 조짐이다. 손 대표 측은 일단 유보적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곤혹스러운 상황이다. FTA문제가 중도에 무게를 실은 손 대표에겐 첫 시험대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