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中 고대 경제書의 부활 "이제는 미국에 'No'를 외쳐라"
중국인들은 서양인들에 비해 수리(數理)와 논리에 약하다고 한다. 언어를 봐도 그렇다. 돈을 좋아하는 국민성 탓에 수리에 밝을 것 같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13억명이나 되는 중국인 중에서도 딱 부러지게 말하는 사람이 도대체가 드물다. 그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두루뭉술한 것이 보통이다. 논리는 더 말할 것이 없다. 사용하는 언어 자체가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나름 논리적일 것 같으나 상대해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니 수리와 논리를 기초로 하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에 강할 까닭이 없었다. 실제로도 중국의 경제학 수준은 미국을 대체할 '슈퍼파워'를 향해 달려가는 현실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이런 편견을 깨는 대작이 하나 나왔다. 학자를 하기에는 너무 저널리스트 지향적이고 기자를 하기에는 너무 학자적이라는 평을 듣는 언론인 출신 학자 자이위중(翟玉忠)의 《국부책(國富策)》이다. 마치 애덤 스미스가 쓴 《국부론》의 짝퉁 같은 느낌을 주는 제목이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중국 최초,최고의 경제 관련 경전으로 손꼽히는 《관자(管子)》를 재해석해 서구 경제학과는 다른 중국만의 경제이론을 구축하려는 의지를 근간으로 한 노고의 산물이다. '서양 경제학에 대한 동양 경제학의 재정립'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부제를 단 것은 그런 까닭이다.
[책마을] 中 고대 경제書의 부활 "이제는 미국에 'No'를 외쳐라"

그렇다고 전체적인 내용이 천방지축의 지독한 독설로 요즘 뜨고 있는 경제학자 랑셴핑(郞咸平) 교수처럼 엄청 도발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왜 중국이 세계의 제국에서 한때 아시아의 병자가 됐고 이제 겨우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됐는지에 대한 중국 지성계의 반성이 더 절절히 녹아 있다. 이 책을 기획한 주역이 저자가 몸담고 있는 베이징대 중국 및 세계경제 연구센터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책은 두툼한 외관과는 달리 비교적 간단하게 구성돼 있다. 《관자》의 중요 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입문'편,현대 경제이론 및 동 · 서양의 역사적인 사건들까지 들춰내 비교하는 '이론'편,어떻게 현실 생활에 적용할 것인가를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실천'편 등 달랑 세 부분이다.

《관자》라는 경전 자체가 비교적 어렵고 경제학이 결코 만만한 학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는 꽤나 쏠쏠하다. 특히 저자가 나름대로 재구성해 '실천'편에 수록한 고대 36가지 경제정책과 관련한 전략은 마치 《손자병법》의 36계를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한마디로 이 책의 백미라고 해도 좋다.

그렇다면 저자와 베이징대가 왜 하필 이 시점에 이 책을 기획,출판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해답은 아무래도 중국 내외의 정세에서 찾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를테면 댜오위다오(釣魚島 · 일본명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 분쟁과 희토류 대일 수출 금지 압박,위안화 절상을 둘러싼 미국과의 심각한 갈등 등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이다.

다시 말해 일본을 굴복시키고 미국까지 압박하게 된 세계적 슈퍼파워다운 자신들의 경제적 논리를 합리화할 이론적 토대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더 충격적으로 말하면 아마도 미국과 세계를 향해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할 때가 됐다는 선언을 하기 위한 기획,출판이라고 해도 크게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이 책은 이를 위해 중국이 나아갈 전략적 방향을 대략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가능하면 외국의 자원을 이용하고 자국의 자원은 유출시키지 않는 전략,인플레이션을 사전에 방지해 물가를 안정적으로 유지한 다음 외국 화폐들이 자국 화폐에 미치는 충격을 줄이는 전략,불균형 발전을 개선하고 빈부 격차를 줄이는 전략 등이다.

각각 중국 정부가 지금 추진하는 자원 외교,위안화 절상을 놓고 벌이는 미국과의 힘겨루기,금세기 들어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른바 허셰(和諧) 사회의 건설 노력과 그대로 맞물린다는 느낌이 없지 않다. 책을 읽다 최근 중국 정부의 행보가 혹시 저자나 베이징대의 자문에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자들이나 정부의 자문에 응하는 학자들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굳이 더 이상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 같다. 필자와 베이징에서 비슷한 시기에 6년 동안 같이 활동한 전직 특파원인 역자 홍순도씨와 고전 전문가인 홍광훈 교수의 깔끔한 번역도 이 책의 권위에 한몫한다.

김영진 < 신구대 비즈니스중국어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