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트럼페터 니니 로소가 연주하는 '밤하늘의 트럼펫'은 뭇사람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김철수 엠아이텍 대표(52)는 이 음악에 반해 트럼펫 연주를 취미로 삼았다. 금관악기 중에선 색소폰이 가장 대중적이지만 김 대표는 남들이 어려워서 꺼리는 악기를 다룬다.

그가 만드는 제품도 마찬가지다. 미크론 단위의 정밀기술을 필요로 하는 스텐트(stent)다. 기술적으로 까다롭지만 생명을 구하는 첨단제품이다. 그는 이같이 어려운 분야에 도전해서 성공하는 데 희열을 느낀다.

수도권 전철을 타고 오산을 지나면 송탄 직전에 진위역이 나온다. 이 역에서 10분 거리에 엠아이텍이라는 업체가 있다. 행정구역으론 경기도 평택시 진위면 하북리다. 주위엔 벼들이 익어가는 논과 각종 야채가 심어진 밭이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면 파란 잔디가 깔린 마당이 나온다. 사무실 1층 로비에는 각종 제품이 전시돼 있다. 그물처럼 생긴 원기둥 모양의 스텐트다. 스텐트는 막힌 식도나 담도 등을 소통시키기 위해 몸속에 넣어주는 작은 금속제품이다. 좀 더 전문적으로 말하면 인체 내 혈관이나 소화기관 등의 내강(內腔)이 암과 종양 등에 의해 막히거나 좁아진 경우 내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몸속에 집어넣는 원통형 의료기기다.

사무실과 붙어있는 생산라인에 들어서면 근로자들이 스텐트를 만든다. 직경 100미크론 정도의 아주 가는 특수 와이어를 쇠원통 위에 그물 형태로 감은 뒤 열처리와 코팅 과정을 거친다.

마지막 공정은 방진복을 입은 근로자들이 클린룸에서 작업한다. 소재인 특수 와이어는 니켈과 티탄으로 구성된 형상기억합금이다. 몸속에 들어가서도 제 모양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사는 일반인들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국내외 관련 병원에선 유명하다.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아산병원 등 국내 병원에 스텐트를 공급하는 것은 물론 유럽 동남아 등 세계 50개국으로 수출하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500만달러 수출탑,나노산업기술상을 받았고 지식경제부로부터 세계 일류화 상품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스텐트는 크게 소화기 · 심혈관 · 뇌혈관 계통 등 3가지로 나뉜다. 이 회사가 지금 만드는 제품은 식도 담도 십이지장 소장 대장 등 소화기계통에 들어가는 스텐트다. 원통 지름이 수㎜에서 수십㎜에 이르는 제품이다.

김철수 대표는 "우리 제품은 내장 속에 들어가서 휘어지더라도 원통의 크기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제자리에 정확히 자리잡는 게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특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구조특허' 덕분"이라고 덧붙였다. 겉으로 보기엔 간단한 구조의 그물이지만 이를 모방할 수는 없다. 특허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지식재산권은 61건에 이른다.

종업원이 67명에 불과한 중소기업이 어떻게 이런 첨단제품을 개발하고 유럽과 동남아 등지로 수출할 수 있을까.

첫째,네트워크를 통해 최대한 좋은 인재와 함께 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엠아이텍에도 우수한 인력들이 있다. 박사 7명,석사 7명을 비롯한 연구개발 인력이 25명에 달한다. 전체 인력의 36%가 연구개발부서에서 일한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스텐트는 의공학 유전공학 화학 생물 고분자기술 금속 등의 융합이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서울대 공대,연세대 의대,KAIST 등 10여개 기관과 협력해 작업한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이 좋은 인재를 전부 뽑아서 쓸 수는 없기 때문에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한다"며 "해당 분야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의사 교수 연구원들이 누구보다 바쁜 중에도 협업에 흔쾌히 응해줘 감사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국의 유타대 워싱턴주립대 메이요클리닉 등과 공동 임상을 하는 등 외국과도 협업체제를 갖추고 있다"고 덧붙였다.

둘째,철저한 품질 관리를 위해 미국의 말콤볼드리지 품질관리 방식을 도입했다. 그는 "말콤 볼드리지 모델은 일본에 뒤지던 미국이 제조업의 부흥을 위해 1980년대 각 분야 전문가들을 통해 만든 경영관리 방식"이라며 "이를 활용하면 각 분야를 점검하고 부족한 분야를 발전시키는 데 아주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특히 기업활동을 정량적이고 과학적으로 진단해 개선점을 찾아내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셋째,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든다. 임금 · 복지면에서 사무직과 생산직 간의 차별이 없다. 동종업계 최고 수준으로 대우해 준다. 모든 사원은 자기 생일날 하루의 유급휴가와 생일축하금 30만원을 받는다. 아무리 바빠도 생일날은 반드시 쉬어야 한다. 가족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내라는 회사의 배려다.
2년에 한 번 전 사원이 '해외연수'를 떠난다. 2003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회사 입장에선 모든 경영활동이 중단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임직원의 단합과 글로벌화가 더 중요하다고 김 대표는 여기기 때문이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과정을 수료한 김 대표는 솔고바이오메디칼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1998년 수호메디테크(창업은 1991년)를 인수한 뒤 1999년 엠아이텍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첨단 의료기기 개발에 온힘을 쏟고 있다. 그는 "기업은 제대로 된 기술을 개발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중소기업이 기술은 있는데 인력과 자금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좋은 기술을 갖고 있는 업체는 많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원천기술이나 첨단기술이다. 그는 "이런 기술을 확보하는 데 그동안 번 돈의 대부분을 쏟아부었다"고 설명했다.

그가 기술개발을 그토록 중시하는 것은 아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0년 전 미국 굴지의 업체로부터 혈관용 스텐트를 개발키로 제의받고 함께 작업을 했으나 모든 면에서 요구조건을 충족시켰는 데도 내구성에서 떨어져 결국 실패한 경험이 있다"고 소개했다. "세계적인 업체로부터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는 우리가 벌써 이만큼 올라섰구나 하는 자만감에 우쭐했고 뭔가 금방 이뤄질 것으로 자신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고 덧붙인다. 이를 거울삼아 더욱 철저한 연구개발과 생산체제를 갖추게 됐다.

주력 제품인 소화기 계통의 스텐트를 포함한 전체 매출은 작년 92억원에 달했고 올해는 125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매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85%에 이른다.

소화기용 스텐트에 이어 혈관용 스텐트와 뇌혈관 스텐트도 개발 중이다. 이 중 혈관용 스텐트는 소화기 스텐트에 비해 훨씬 작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다. 세계시장 규모는 소화기 계통의 제품에 비해 20배 이상 크다. 뇌혈관 스텐트는 서울대병원과 공동으로 2008년 5월에 개발했으며 현재 임상 시험 중이다.

김 대표는 "세계 스텐트 시장 규모는 연간 12조원에 이르는데 소득수준이 올라가고 수명이 길어질수록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유망 분야다. 그는 "소화기용 스텐트 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며 "앞으로 모든 종류의 스텐트를 만드는 스텐트 종합업체로 도약해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를 걸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심부 뇌자극기(DBS:Deep Brain Stimulator)'도 개발하고 있다. 작년에 개발한 이 제품은 현재 전임상 단계를 밟고 있다. 신장 투석 환자에게 필요한 인조혈관 개발에도 나서고 있다. 사람 목숨 구하는 첨단 의료기기 개발에 힘쓰는 김 대표의 도전이 어떤 멋진 사운드로 울려퍼질지 관심을 모은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