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사태 원인보다 행위 위법성 따져
재판부 "정당한 절차 거쳐 항의 표시해야"

국회 폭력 혐의로 기소된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 대한 무죄 판결을 항소심 재판부가 유죄로 뒤집은 것은 폭력 사태의 배경보다는 `행위 자체의 위법성'을 더 중시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1심 재판부는 "폭력사태를 초래한 국회 질서유지권이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해 공무집행방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폭력행위 자체보다는 국회 질서유지권 발동의 절차적 적법성을 문제 삼았다.

강 의원이 폭력을 행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 있는' 절차에 항의하려는 불가피한 사정이 인정된다고 본 것이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국회 사무처가 현수막 철거의 근거 규정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적법한 직무집행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다"며 질서유지권 발동의 적법성을 달리 해석했다.

대신 방호원을 따라나가 상의를 잡아당기고 멱살을 흔든 강 의원의 행위는 명백한 폭행으로 인한 공무집행방해이며, 신문 스크랩을 검토하며 업무를 보던 사무총장 방에 들어가 탁자를 넘어뜨린 것도 공용물건손상과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강 의원은 소수 정당의 대표로서 항의한 정당한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정식 절차를 밟아서 의사를 표시할 수 있었다"며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 의원에 대한 1심 무죄 판결과 비슷한 사례로는 민주당 문학진, 민노당 이정희 의원에 대한 판결이 있다.

문 의원은 지난해 말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동의안 상정 과정에서 국회 외교통상위원장 비서실 출입문을 해머로 내리쳐 손상한 혐의로, 이 의원은 외통위 위원들의 명패 5개를 바닥에 던져 부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함께 기소된 민주당 당직자들에 대해서는 "부당한 질서유지권 발동에 근거한 국회 경위와 공무원의 직무집행은 위법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행위가 공무집행방해죄를 구성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강 의원의 상고심 등 남은 재판에서도 국회 사무처의 직무집행이 적법했는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여지가 남아있다.

그동안 강 의원에 대한 1심 무죄 판결은 검찰과 법원의 갈등을 촉발시키는가 하면 변호사 사회에서도 적잖은 논란을 낳았다.

또 담당 판사에 대한 보수 단체의 비난이 계속돼 경찰의 신변 보호를 받기도 했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심리를 단독판사가 아닌 합의부에 맡겨야 한다는 논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eoyyi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