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 "혼인관계 더이상 회복 어려울 정도로 파탄"

법원이 온갖 폭언과 모욕 등에 시달리다가 남편에게 독극물를 먹여 살인미수 혐의로 형사 입건까지 됐던 여성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였다.

2일 서울고법에 따르면 1979년 남편 B씨와 혼인한 뒤 2남 1녀를 둔 A씨는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와 폭언ㆍ폭행, 인격적인 모욕 등으로 90년대 중반 이후 각방을 써왔다.

그러던 중 A씨는 2005년 술에 취한 남편이 욕설을 내뱉으며 물을 달라고 하자 순간적으로 화를 참지 못하고 방역용 농약을 갖다줬고 이 때문에 살인미수 혐의로 입건됐지만, B씨의 선처 요청으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B씨는 동네 주민들이 있는 자리에서 `농약으로 남편을 죽이려 한 여자'라는 말을 하는 등 A씨에게 온갖 인격적 모욕과 폭행을 가했고, 요가를 배우려 한다는 이유로 옷을 찢어버리는 등 구속도 나날이 심해졌다.

이혼 소송을 준비하려고 가출하기도 했던 A씨는 자녀들의 설득으로 `부부 산행, 매달 2회 가족 외식' 등의 내용을 합의하고 귀가했으나, 남편은 여전히 관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이혼 및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1심 재판부는 `A씨가 순간적으로나마 남편을 살해하려 한 바 있는 점 등을 고려해보면 혼인파탄의 귀책사유가 남편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가사2부(조경란 부장판사)는 "두 사람은 이혼하고 B씨는 A씨에게 재산분할로 13억5천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남편의 일방적인 경제권 행사와 무시ㆍ모욕, 아내가 농약을 먹인 사건과 부부관계 거부 등 혼인관계가 쌍방의 책임으로 더 이상 회복되기 어려운 정도로 파탄됐고, 이는 이혼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관계파탄의 귀책사유가 농약을 먹인 아내에게 있어 청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남편의 주장에 는 "A씨의 행위는 B씨의 독선적인 태도, 지나친 구속 등으로 유발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혼을 거부하면서도 아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 점 등에 비춰볼 때 주된 책임이 A씨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sj997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