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여중생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혐의로 이모(19)군에 대해 다섯 차례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이번에는 '각하'라는 표현을 쓰며 발부하지 않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14일 서울서부지법에 따르면 검찰이 사체유기 등 혐의로 이군에 대해 지난 12일 재청구한 영장은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영장실질심사를 한 이병로 수석부장판사는 영장을 발부하지 않는 취지를 기재하는 란에 이례적으로 '기각' 대신 '각하'라는 표현을 썼다.

이 부장판사는 "피의자의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 인멸, 도주의 우려가 없어 범죄의 중대성과 새로 추가된 방조 행위를 감안해도 지난 네 차례 결정과 판단을 달리하기 어렵다"고 각하 사유를 설명했다.

또 "이미 네 차례에 걸쳐 구속영장이 기각됐는데도 거듭해서 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강제처분이 필요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허용돼야 한다'는 원리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제201조 4항에는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때 그 취지와 이유를 기재한다고만 돼 있을 뿐 각하와 기각을 따로 구별하는 조문은 없지만, 법원은 통상 영장 발부를 거부할 때 기각이란 표현을 쓴다.

다만 민사 재판에서는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거나 절차가 틀렸을 때 '기각' 대신 '각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법원이 그동안 네차례 영장 청구를 '기각'했다가 이번에 이례적으로 '각하'한 것은 역시 이례적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반복된 검찰의 영장 청구에 대한 입장을 우회적으로 표시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재판이라는 형사사법 절차의 대원칙을 검찰이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법조계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 서부지검 오광수 차장검사는 재청구 영장이 각하된 데 대해 아무 언급을 하지 않고 "구속된 공범의 구속 기간이 조만간 만료되기 때문에 기한 내에 사건을 법원에 기소할 것"이라고만 했다.

검찰은 이군의 죄질이 공공 안전을 위협할 정도로 나쁜 데다 숨진 피해자의 폭행을 부추기는 등 폭행 과정에 일부 관여한 혐의를 추가로 확인해 지난 12일 다섯 번째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군은 지난달 12일 평소 알고 지내던 정모(15)군 등 청소년 5명이 친구 김모(15)양을 때려 숨지게 하자 김양 시신을 흉기로 훼손하고 한강에 버리는 것을 주도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군은 김양이 폭행당하는 장면을 지켜봤고 정군 등에게 구타를 부추기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수차례 보낸 것으로 조사돼 다섯 번째 영장에서 공동상해 혐의가 추가됐다.

법원은 김양을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정군 등 가해 청소년 4명에게는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단순히 폭행에 몇 차례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 이군에 대해서는 영장을 계속 기각해 법원과 검찰이 한달 가까이 신경전을 벌여 왔다.

검찰은 도주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법원의 판단을 인정하더라도 이군의 경우 '범행의 잔혹성과 사회적 안전을 볼때 법의 엄정함을 구하는 게 옳다고 본다'는 측면에서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고수해 왔다.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김효정 기자 yjkim8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