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 시기였던 1930년 6월17일.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는 훗날 미 역사상 최악의 무역정책으로 비난받게 될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서명했다. 공화당 소속인 리드 스무트와 윌리스 홀리 의원의 주도로 만들어진 이 법안은 2만여개의 수입품에 대해 평균 59%,최고 400%에 달하는 고율의 관세를 매긴다는 게 주요 골자였다.

미 의회와 정부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의 시행으로 대공황 쇼크로부터 자국 산업과 국민들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세계 무역시장을 무너뜨렸고,각국에 보호주의 전쟁을 촉발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더욱 안타까운 건 80년 전의 정책 실수가 현재까지도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은 발상의 출발점부터 잘못돼 있었다. 공화당이 이 법안의 도입을 이끌었던 이유는 주요 지지층인 농부들의 표심을 장악하기 위해서였다. 관세 장벽을 높이면 높일수록 자국 농업시장이 탄탄해질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같은 계산은 빗나갔다. 미 농업 수익의 대부분이 수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면화의 절반과 담배의 30%가 나라 밖으로 팔려나갔다. 이들 농작물의 가격 역시 미 내수시장이 아닌 해외 선물시장에서 결정됐다.

미 경제학자 1028명은 타국의 보복관세를 우려해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냈다.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월터 리프먼은 이 법안에 대해 "멍청함과 탐욕에서 나온 끔찍하고 해로운 결과물"이라고 꼬집었다. 물론 스무트-홀리 관세법에 대공황의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법안 때문에 대공황의 충격이 배가됐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동감한다.

미국의 주요 무역 파트너인 캐나다를 예로 들어보자.스무트-홀리 관세법이 시행된 후 캐나다는 영국과 합동으로 대미(對美) 보복관세 조치에 나섰다. 이에 따라 캐나다로 수출되는 미국 계란의 경우 92만다스에서 1만4000다스로 급감했다. 반면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계란은 1만3000다스에서 8000다스로 소폭 줄었을 뿐이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당초 취지와는 달리 미 양계업자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힌 것이다.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가르쳐 준 가장 뼈아픈 교훈은 다른 나라들로부터 반발을 사는 보호무역론은 역효과를 부를 뿐이라는 것이었다. 또 미국이 글로벌 무역시장의 규칙을 깼을 때 어떤 파국을 맞게 되는지도 함께 알려줬다. 아울러 적극적인 통상 외교를 위해선 무역시장의 개방이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점도 깨우쳐 줬다.

미국이 계속 소극적인 무역정책으로 일관한다면 다른 국가들에 시장 우위를 빼앗기게 될 것이다. 또 경쟁국들끼리 무역동맹을 맺으면 미국의 수출을 저해할 가능성도 더욱 높아지게 된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국 및 콜롬비아와 맺게 될 자유무역협정(FTA)이 의회에서 빨리 통과될 수 있도록 모든 힘을 기울여야 한다.

더글러스 어윈 다트머스대 교수·경제학 / 정리=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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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미국 다트머스대의 더글러스 어윈 경제학 교수가 "'보호무역론자'란 말은 어떻게 모욕적 의미를 갖게 됐을까(How 'Protectionist' Became An Insult)"라는 제목으로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