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행위 손배 청구기간 20년으로 늘린다
상거래 짧아져 채권 소멸시효 단축
부동산 선의 점유도 점유자가 입증
A씨는 사기와 무고죄로 기소됐으나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A씨는 당시 조사 경찰관이던 B씨에 대해 "관련자들로부터 허위진술을 받는 등 불법수사를 진행했다"며 3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문제는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였다. 손해배상 청구권은 당사자가 피해를 안 날로부터 3년,피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사라지게 된다. A씨는 피해를 안 날로부터 하루가 더 지나면서 손해배상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패소했다.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추진하는 대로 민법이 내년께 개정되면 A씨와 같은 피해자들이 향후 생길 경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손해배상청구 기간 10년→20년
법무부 민법개정위원회가 최근 마련한 민법 개정시안에 따르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나 법정대리인이 그 손해와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5년 동안 행사하지 않으면 소멸되도록 했다. 현행 민법 766조에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3년으로 명시돼 있다. 또 현행 법에서는 피해자의 인지 여부와 상관없이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날로부터 10년이 지나면 청구권이 사라지나,개정시안에서는 두 배인 20년이 지나야 소멸하도록 했다. 위원회의 김성수 경찰대 법학과 교수는 "불법행위자가 장기간 진상을 은폐하거나 손해 발생이 뒤늦게 알려져 손해배상을 할 수 없어지는 경우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발생 관계가 비교적 명확한 채권의 소멸시효는 오히려 줄어든다. 현행 민법 162조는 '채권은 10년간 행사하지 아니하면 소멸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개정시안은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때부터 5년'으로 단축했다. 또 채권자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시효 기간이 무한정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알지 못하더라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때로부터 10년을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을 두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정보기술(IT) 등의 발달로 거래 기간이 짧아지는 추세라는 점과 국제 거래 급증에 따른 해외 규정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채권 소멸 시효를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선의'로 20년 점유해야 인정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던 부동산의 점유취득시효제도도 개정될 전망이다. 현행 민법 245조에서는 '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하고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할 수 있다'고 규정해 소유권 침해를 놓고 당사자 간 다툼이 많았다. 개정시안에서는 여기에 '선의로 과실 없이'라는 문구를 추가했다. 남의 부동산인 줄 알면서 점유하는 자의 악의적인 취득을 억제하려는 취지에서다. 또 선의로 점유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도 점유자가 입증하도록 했다.
◆비영리법인 허가에서 인가로
개정시안은 또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를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비영리법인의 설립을 허가주의에서 인가주의로 바꾸기로 했다. 현행 민법 32조는 비영리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사단 또는 재단이 주무 관청의 허가를 얻어야만 법인으로 설립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이에 대해 "결사의 자유를 해친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윤철홍 숭실대 법대 교수는 "영리법인은 일정한 요건을 갖추면 자유롭게 할 수 있는데 비영리법인만 엄격한 허가주의를 적용한 것은 평등의 원칙 침해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개정시안을 토대로 관계 부처 협의와 공청회를 거쳐 올해 말까지 민법 개정안을 확정, 내년 상반기 중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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