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여자'. 국내에서 가장 무대에 많이 오른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가 새로운 제목으로 공연된다. 다음 달 25~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나는 '라 트라비아타'의 제목은 '길 위의 여자'다.

소극장 오페라 운동을 이끌며 실험적인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장수동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겸 예술감독(53)이 이번에도 색다른 공연을 예고했다.

"한동안 일본식 제목인 '춘희'로 불려진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는 '사이(Tra),길(via),여자(ta)' 즉 '길 위의 여자'를 의미해요. 이번에는 무엇보다 원작에 충실한 공연이 될 겁니다. 그렇다고 무대,의상,연출 등을 예전 것 그대로 반복하지는 않죠.아름다운 아리아와 극의 메시지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를 꾸밀 거예요. "

장 대표는 최근 막을 내린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에서도 원작의 배경인 고대 그리스를 서울 지하철 플랫폼으로 옮겨 호평을 받았다.

이탈리아 라스칼라 극장 오페라 연출아카데미아 출신으로 '토스카' '마농 레스코' 등 100여편을 연출한 그에게 오페라는 '고인 물'이 아니다. 고전일수록 '지금,여기'에 맞게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대 디자인 도면을 보여주며 "'길 위의 여자'라는 제목답게 이번 무대에서는 길의 이미지를 강조한다"며 "막이 진행될수록 무대 뒤편으로 수렴되는 길 모양의 구성이 명료해져 불안한 한 여성의 심정을 더욱 잘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산업혁명 이후 귀족,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애환과 불안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무대를 도입한 것이다. 그는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라고 덧붙였다.

18세기 파리 사교계였던 배경은 연도를 알 수 없는 가상의 도시로 바뀌었다. 동과 서가 부딪치는 곳으로 이질적인 것들이 뒤섞인 공간이다. 한 · 러 수교 20주년 기념공연인 이번 무대의 캐스팅도 여자 주역을 한국인이 맡으면 남자 주역은 러시아인이 맡는 식으로 동서양의 만남을 강조했다. 의상도 원작과 달리 동양적인 선을 강조했다.

장 대표는 "한국 오페라도 원작의 고유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이탈리아와 미국 등에서는 다양한 해석의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우리도 세계 오페라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루벤스 그림 '한복 입은 남자'를 모티브로 한 창작 오페라를 준비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부보상이 일본,인도 등을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는 과정을 그린다. 한국,일본,이탈리아 등 극의 배경이 바뀔 때마다 해당 국가의 언어로 아리아를 부르고 대사를 처리하는 새로운 형태의 오페라다.

'라 트라비아타(길 위의 여자)'는 뒤마의 소설을 베르디가 오페라로 옮긴 작품으로 순진한 청년 알프레도와 비올레타의 비극적인 사랑을 담고 있다.

김주완 기자 kjw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