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 워싱턴 공동성명 포함 요구에 美측 거절

지난 1980년 광주민주항쟁을 진압하고 집권한 전두환 대통령은 1981년 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의 첫 한미정상회담 당시 공동성명에 자신에 대한 미 행정부의 정치적 지지를 명시적으로 포함시키려 했으나 미국 측의 거절로 무산된 것으로 밝혀졌다.

8일 미국 조지 워싱턴대 부설 민간연구기관인 국립안보문서보관소(NSA)가 이달 초 기밀해제로 공개한 미 국무부 공문서에 따르면 그해 2월1일 노신영 외무장관과 알렉산더 헤이그 국무장관 간 양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한국 측은 공동성명 초안에 정치적 지지 문구를 포함시켜줄 것을 요청했다.

양국 외무장관 회담은 정상회담에 하루 앞서 공동성명 최종 조율을 위해 열린 것으로 한국 측에서는 허화평 대통령 정무수석, 공로명 외무부 차관보, 미국 측에서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도 참석했다.

국무부 문서는 "한국이 가지고 온 공동성명 초안에는 한국의 정치적 안정을 복원하기 위해 취한 전 대통령의 다양한 조치들을 지지하는 `정치적'(political) 문장들이 포함돼 있었다"며 이에 헤이그 장관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헤이그 장관은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초청한 것 자체가 말보다도 중요한 것이며, 미 행정부는 한국의 국내 문제에 대해서 공식적인 언급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한국 측 요구를 거절했다고 국무부 문서는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전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찬양'함으로써 초래될 수 있는 미국 국내의 반발을 피하면서 전 대통령의 미국방문 초청을 통해 전임 카터 행정부 당시 악화됐던 한미관계를 복원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리처드 알렌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그해 1월19일 작성해 레이건 대통령에게 보낸 메모는 "이번 정상회담은 한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이정표"라고 회담의 의미를 정리했다.

알렌 보좌관은 "전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한국내 리더십이 공인되고 정통성을 부여받을 것이며, 이는 어떤 다른 이벤트로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하며 이번 회담을 통해 전임 카터 행정부 시절 한미간 불화를 벗어나 새로운 양국 관계를 형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알렌 보좌관은 "카터 대통령이 아시아에 보낸 첫 메시지가 주한미군 철수였다면, 레이건 대통령의 첫 메시지는 미국이 아시아의 자유세계 수호에 중요한 관심을 깨닫고 있으며, 태평양 지역의 안보와 번영을 위해서는 미국의 힘과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백악관과 국무부 참모들은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에게 전할 메시지로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재확인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 지원 ▲미국 대북정책의 한국과 사전협의 약속 ▲한국의 핵비확산 정책 이행 재확인 등을 제시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월20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외국정상 중 첫 번째로 미국방문을 초청해서 추진한 전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2월2일)에서 고위 참모들이 정한 이 같은 회담 목표에 따라 정상회담을 진행하고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특히 정상회담에서 전임 카터 대통령이 강조했던 한국 인권문제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인권문제를 적절한 방식(proper manner)으로 고려해야 한다.

과거 미국은 죽의 장막, 철의 장막 너머 더 좋지 않은 인권문제에 대해 무시하는 것처럼 보였다"며 전두환 정권의 인권탄압을 외면하는 태도를 보였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