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과 케네디가 의원에 당선된 해는 1846년과 1946년,대통령에 당선된 해는 1860년과 1960년이다. 두 사람은 금요일에 각각 포드극장과 포드자동차 안에서 암살됐다. 죽기 1주일 전 케네디는 여배우 마릴린 몬로를 만났고,링컨은 마릴린 몬로(지명)에 있었다. 서로 다른 두 시대의 사람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같은 운명을 반복한다는 이른바 '평행이론'의 대표적인 논거다.

권호영 감독의 연출 데뷔작 '평행이론'(18일 개봉)도 비슷한 상황을 다룬다. 주인공은 서른여섯살에 최연소 부장 판사에 오른 직후 아내가 피살된 김석현.그는 30년 전 자신과 유사한 상황의 한 부장 판사가 아내를 잃고 끝내는 딸과 자신마저 살해됐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 영화에서 김석현 부장 판사 역을 해낸 배우 지진희(39)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몇 년 전 방송에서 '평행이론'을 처음 접했을 때 참으로 신기했어요. 링컨과 케네디뿐 아니라 히틀러와 나폴레옹 등 10여 명의 유명 인사가 거론됐지요. 평범한 사람들도 비교할 근거가 없을 뿐이지,얼마든지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겁나기보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죠.영화도 흥미로울 겁니다. "

그는 피가 튀고 잔혹한 일반 스릴러와는 다르다고 거듭 강조했다. 폭력적인 장면을 가급적 줄인 대신 주인공이 딸을 살려낼 수 있을까를 끝까지 궁금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많은 스릴러들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는 것과 달리 이 영화는 15세 이상 관람등급을 받았다.

"배역을 연기하기 위해 판사를 만나보니 사람 사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비슷하더군요. 판사도 현명한 판결을 내리려면 배우처럼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판사란 직업은 결코 운명론자가 돼서는 안되겠더군요. 판결을 내릴 때는 반드시 근거를 바탕으로 해야 되기 때문이죠.절대 운명을 믿지 않을 듯한 주인공이 사건을 계기로 운명을 점점 믿게 되는 겁니다. "

그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자신의 운명을 돌아볼 것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한번쯤 고민해봤을 법한 상황이 영화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찍으면서 제가 이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운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원래 배우에 관심이 없던 제가 이 길로 들어섰으니까요. 세상에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노력한다고 모든 일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요. "

그를 연예계로 끌어들인 사람은 싸이더스 HQ의 본부장을 지낸 박성혜씨였다. 박씨는 최근 출판한 책에서 광고기획사에서 일하던 지진희를 1년 동안 설득해 배우로 데뷔시켰다고 썼다. 지진희는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배우로 나서게 됐고 마침내 '대장금'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처음에 거절했던 것도 운명이었고,나중에 배우가 된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에 따라 약간 다르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마음먹은 대로 좋은 방향으로 일이 풀리거든요. 긍정적인 마음이 제 삶에 늘 힘을 줍니다. "

그는 줄줄이 예고된 출연작들도 좋은 결실을 맺을 것으로 낙관한다. '대장금'의 이병훈 PD가 연출하는 사극 '동이'가 3월부터 방송되고 코미디 영화 '집나온 남자들'은 4월 중 개봉된다. 내년 봄에는 중국 영화 '길 위에서' 촬영이 개시된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두 사람의 운명이 똑같다면…소름? 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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