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자율성보다 책임 경영에 `무게'

8일 법원이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에 700억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한 것은 경영 판단이라도 정해진 범위를 일탈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으면 형사는 물론 민사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대차의 대표이사인 정몽구 회장이 무리한 경영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주장하며 소송을 낸 경제개혁연대와 소액주주의 손을 법원이 들어준 것이다.

경제개혁연대가 소액주주 소송에 참여한 것은 정 회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라고 현대차 법인에 요구했다가 거절됐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IMF라는 특수한 경제상황과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이뤄진 행위 등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이유로 소송에 난색을 보였다.

경영자의 과실에 회사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소액주주와 시민단체는 잘못된 관행을 불식해야 한다며 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이번에 승소했다.

이번 소송의 쟁점은 `경영자의 자율성'과 `책임 경영' 두 가지 가치였다.

법원은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 것인가를 고심한 끝에 정 회장 등의 책임을 인정해 경영권 행사 제어를 주장하는 측에 힘을 실었다.

이번 소송은 소액주주가 주주대표소송의 형태로 제기한 것이라서 그간 회사 경영 판단에서 대주주보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이들의 권리 및 견제 기능을 되돌아 보게 한 의미도 있다.

재판부는 "현대강관에 대한 유상증자 참여 등은 계열사 내부의 위치나 현대차에 대한 안정적 원료 공급이라는 측면에서 경영 판단이라고 볼만한 점도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 회사에 손실을 끼칠 구체적 가능성이 있었던 점이 인정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 측이 거액의 배상 판결에 불복할 개연성이 커 2차 공방이 상급심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재계의 경영권 전횡 관행을 개선하는 데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돼 항소 여부가 주목된다.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