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오는 6월 월드컵 기간에 살인과 강도를 저지르겠다고 방송을 통해 공언한 `예비 범죄자'들의 신원 공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이 이들을 검거하기 위해 방송사에 취재기자들의 출석을 요구하면서 취재원 보호라는 언론의 기본 윤리와 월드컵 안전 개최라는 공익이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야기된 것.
이번 논란은 현지 방송사 eTV가 지난 15일 월드컵 안전 문제를 다룬 프로그램에서 범죄자 2명의 인터뷰를 방영한 것이 발단이 됐다.

이들 중 한 명은 얼굴에 스타킹을 쓰고 나와 월드컵 기간에 살인과 강도를 저지를 것이라고 `고백'했으며, 나머지 한 명은 권총에 총알을 장전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런 장면은 월드컵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재차 불러일으키면서 남아공 사회에 큰 반향을 야기했다.

특히 남아공이 월드컵을 유치한 이래 수 년 간 불안한 치안 상황을 꼬집는 세계 언론의 비판에 시달려온 치안 당국은 나티 므테트와 치안장관과 베키 셀레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 eTV가 월드컵 불안감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방송에 출연한 범죄자들의 신상 명세를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경찰은 또 이들 범죄자를 인터뷰한 기자와 편집장을 오는 25일 경찰에 출두하도록 소환장을 발부하는 것으로 eTV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eTV 측이 즉각적인 입장 표명을 유보하고 있는 가운데 집권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20일 성명을 발표, eTV 측에 월드컵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협한 범죄자들을 체포하는데 협조하라고 가세했다.

반면 야당인 민주동맹(DA)은 경찰과 ANC의 행위는 헌법에 보장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면서 "만약 ANC가 월드컵을 앞두고 남아공의 이미지 훼손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면 지금은 방송사와 전면전을 벌일 시기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또 남아공편집인포럼도 "언론인이 경찰의 정보원 노릇을 하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면서 경찰의 소환령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eTV와 범죄자들을 연결해준 40대 남자가 전날 "eTV기자가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라고 적힌 유서를 남긴 채 독극물을 마시고 의문의 자살을 해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권정상 특파원 jusang@yna.co.kr